새벽 세 시_Wish

by 드작 Mulgogi

2015년 8월


꿈을 꿨다. 당신과 함께 하는 꿈을.

그저께 꿈을 꿨다. 이 년만에. 당신 꿈을 꿨다.


잘 지내는지.

안부 대신 당신에게 받았던 영감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1)

제임스 딘과 쳇 베이커가 다녀가는 밤이다. 왜 시대의 천재들은 사고로 요절하거나 자살이라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지. 쳇 베이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는 설이 있지만 그래도 그가 안타깝게 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창밖으로 검은 밤을 흘러가는 운무처럼 나의 주위 모든 것이 변해가는 듯해도 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흠칫 놀랄 때가 잦다. 멀리 가져다 놓으면 또다시 제자리. 내 기억의 탄성이 늘 이 모양이듯. 먼 망각의 바다에 뿌려 놓아도 어김없이 돌아오고 마는 내 기억처럼.


2)

꿈을 꿨어. 조르바의 목소리가 들리는 꿈을. 어제는 친구의 생일 파티가 있었고, 조금 부족한 맥주를 딱 한 잔만 더 마시고 싶었지.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혼자 즐길만한 펍을 찾아 서성거렸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펍을 찾는 일. 이전에도 꼭 같은 일이 있었는데. 그땐. 혼자가 아니었어. 우리였지.


추억이 서린 곳에서의 한 잔을 위한 발걸음은 가벼워졌지. 콧노래가 조금 났어. 그곳에서는 혼자 한잔 마셔도 전혀 이상해 보일 리 없을 것 같았거든. 흥에 겨운 음악과 술에 취한 사람들, 그리고 나 같은 이방인이 한두어 명쯤은 있을 것 같았거든.


맥주를 반쯤 마셨을 때 리투아니아 사람이 말을 걸어왔어. 한국에서 만난 리투아니아 친구로 인해 난 이미 유럽에 리투아니아라는 작은 나라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리투아니아 사람이란 것 말고는 도무지 매력이 없는 그 대머리가 내게 관심을 보였지.


난, 당신한테 관심 없다는 의미에서 리투아니아 사람 옆의 친구 아이리시에게 짐짓 물었어. “당신 정말 아이리시오?” 아무리 봐도 내 눈에 아이리시 같아 보이지 않았거든. 아이리시이면서 아이리시가 아닌 그는 엄마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했어. 역시 내 감은 맞았던 거야. 그리곤 다들 춤을 췄지. 혼자 왔다는 사실을 잊은 채 나도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동안 아주 근사한 여자를 만났어. 여자는 그녀의 애인에 비해 훨씬 아까워 보였지.


리투아니아인이 내게 계속 추근거리자 그녀가 날 대신해 “얘는 당신한테 관심 없으니까 꺼져!”라고 말해줬어. 그녀는 정말 멋졌고 우린 함께 사진을 찍었어. 집에 돌아온 후에야 알았지만 컴컴한 바에서 사진이 잘 나올 리가 없잖아. 맞아. 우린 좀 취했던 것 같아.


마차가 호박으로 변해버리기 전에 집에 가야 했어. 난 신데렐라도 아니고 그곳은 무도회장도 아니었지만 말이야. 나도 모르게 다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거야.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지. 곧장 집으로 들어오지 않은 나는 도로변 가로등 아래에 한참을 서서 Pink Floyd의 Wish You Were Here을 들었어. 그거 알아? 이 음악은 인트로의 기타 선율이 오묘하게 왼쪽과 오른쪽 사운드가 달리해서 나오는데, 그걸 기가 막히게 녹음한 게 환장하게 좋단 말이지.


아, 계속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나는 마치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주변을 살피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광활한 우주에서 충돌한 두 행성이 굉음을 내며 활활 불타오르다 떨어지는 유성의 잔해처럼 울고 말았어. 알 수 없는 비애감에 사로잡힌 채. 새벽, 가로등 아래 주변은 고요했고 울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인 건 분명했어.


한데 지나가는 행인 1을 간과했던 거야. 적막을 깨고 나타난 행인 1은 내게 괜찮냐고 물었어. 도와줄 게 있느냐고. 나는 몰래 울다 들킨 사람. 당황했지. 그렇다고 벼르던 유성의 잔해 의식을 멈출 순 없었거든. 이미 시작된 이야기를 멈추는 짓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법이거든. 게다가 절대 괜찮을 리 없지만 괜찮다, 라고 말했어. 그러자 그는 갈 길을 갔고 나는 몇 분을 더 그렇게 울었어. 내 속에 울분 같은 것들이 사그라진 후. 그제야 집으로 돌아왔어. 시계를 봤는데 새벽 세 시였어.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되는 말의 전선 위에 너의 여럿인 동시에 하나가 가지런히 앉길래 나는 ‘보고 싶다’라고 말했지. 멍청하게도 나는 늘 이 모양이야. 젠장.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밤새도록 너를 토해내고 그간 이곳 더블린에서 겪은 쉽지 않은 어려운 것들 그리고 내 삶의 울분 같은 것들을 게어냈어. 모두 다 토해내고, 열병을 앓듯 신음하다 깨어보니 억눌린 자아가 비틀비틀거리는 꿈을 꿨지. 한 번씩 내 속에 있는 걸 다 게어내고야 마는 나의 기질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불러내어 아주 요상한 꿈을 꾼 하루였어. 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