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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피는 꽃, 무화과

스페인하숙 촬영지

by 드작 Mulgogi

CAMINO DE SANTIAGO

Ponferrada(폰페라다) ~ Villafranca del Bierzo(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Trabadelo(트레발델로)

+24 Day / 2016.07.28

: 33.60km (Iphone record : 32.80km)



아침 일찍 여정을 시작한다.

밤 사이 고요 속에 잠든 마을은 아직도 잠에 취해 있고, 하늘에 달만 내가 가는 길을 비추어 준다.


여자 혼자 걷기에 어쩐지 무서움이 드는 강기슭, 앞서 가는 순례자 무리를 조심조심 따라간다.

두려움도 잠시 곧 날이 밝았다.

작은 성당에 잠시 들렀다가,

다시 길을 걷는데 노란 꽃이 환하게 웃고 있다.

점점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벅찬 마음.

한국에서는 이미 뜬 태양을 보는 게 일상이지만,

순례길에서는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 걸 매일 보게 된다.

마을에 성당에 들르고, 다시 길을 나설 때 아기 고양이가 눈에 띈다.

길냥이들도 순례길을 걷는 건가.

맨발로 걷던 체코 사나이를 따라 맨발 체험을 했던, 프렌치 순례자도 보인다.

마을을 지나 다시 다시 산길의 연속이고, 오늘 태양은 더욱 뜨거운 기분이다.

드디어 용서의 문이 있는 Vilafranca del Bierzo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마을이다. 나는 마을 초입에서 배가 고파 점심을 먹느라 한 시간 가까이 보내고, 용서의 문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쳤는데, 요즘 tvN에서 방영 중인 '스페인 하숙' 촬영지가 바로 이 곳이다.

나중에 사진을 다시 보니 Puerta del Perdon, 일명 용서의 문이다. 이 문은 교황 칼릭스토 3세가 교서로 '병들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순례를 하지 못하는 순례자가 이 문을 통과하면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과 동일하다'고 인정한 곳이다. 이는 이 지방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과 동일하게 정신적 가치가 있는 성당이라 할 수 있다.

무더위를 식히며 점심으로 까르보나라를 먹는데 맥주가 빠질 순 없다.

마을이 골목이 많아서 산니콜라스 성당을 찾는데, 여러 사람에게 길을 물어야 했다. 그러다 장 바구니를 들고 있는 할머니에게 산니콜라스 성당이 어디냐고 물었다. 영어를 잘 못하는 할머니는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시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인다. 자신의 집 앞까지 나를 이끌었던 할머니의 이름은 마리아. 장 바구니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어 내게 건넨다. 그건 다름 아닌 속으로 피는 꽃이라 불리는 무화과다. 나를 언제 봤다고 길 묻는 이방인에게 다짜고짜 무화과를 건네는 것일까. 스페인의 순박한 인심에 다시 한번 감동을 받고, " 마리아 할머니! 무화과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는 성당 쪽으로 향했다.

성당을 둘러보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늘 목적지는 트레발델로, 아직 10km는 더 걸어야 한다. 이미 해는 중천, 가장 더운 오후 1시~3시까지 고속도로를 따라 땡볕을 계속 걸어야 한다. 그야말로 자신과의 싸움이다.

오늘 머물 마을에 거의 다 왔다. 시원한 냇물 소리와 함께 더위를 식혀주는 나무 그늘.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그런 김에 오랜만에 엄마랑 영상통화를 하기로 한다. 그런데 통화를 하는 동안, 엄마는 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하신다. 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 잘 전달하지 못했고, 엄마 걱정만 끼쳐드린 거 같아서 나중에 엄마에게 편지로 나의 현재 마음을 잘 전달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오늘 머물 숙소에 거의 다 왔는데. 내가 머물 곳은 아니지만 또 다른 호스텔에 대한민국 국기가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길에서 만났던 젊은 전도사님을 또 만났다. 한국인들이 순례길을 많이 온다는 증거겠다.

숙소는 나름 깨끗하고 좋았지만 아주머니가 영어를 잘 못하시고 빨래 터 수도가 시원찮았다. 그것만 빼면 5인실 베드를 혼자 사용해서 좋았다. 레스토랑 가서 순례자 메뉴의 저녁을 먹고, 남은 오후는 산책을 하며 천천히 휴식을 취해야겠다.

오후 석양이 마을을 물들이는 풍경을 본다.

빌라 프랑카 마을에서 만났던 마리아 할머니가 준 무화과를 떠올린다.


성경에도 여러 차례 나온 선악과를 상징하는 무화과, 겉으로 화려하게 피어나는 다른 꽃과는 달리 속으로만 꽃피는 무화과를 보며, 문득. 어떤 일을 행하고자 할 때, 겉으로 떠들어대지 말고 경건한 마음으로 인내하고 성숙하게 꽃 피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화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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