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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同行) & 프로젝트 앤 브리지

by 드작 Mulgogi

CAMINO DE SANTIAGO

Trabadelo(트레발델로) ~ Fonfria(폰프리아)

+25 Day / 2016.07.29

: 30.50km (Iphone record : 30.00km)



오늘은 늦게 일어나서 느지막이 출발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르 BAR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길을 나서는데, 아름다운 동행(同行)이 눈에 들어온다.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길을 걷는 것이다.

나이, 국적, 성별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에 오지만 이런 아름다운 동행(同行)을 볼 때면. 내가 결혼을 할지 안 할 진 모르겠지만(비혼 주의는 아니지만),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이와 함께 순례길에 꼭 오리라 다짐했다. 물론 그전에 배우자가 될 사람과 함께 순례길을 먼저 걷겠지만! 혼자 걸어도 자아성찰과 함께 행복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길이다 보니, 소중한 사람과 꼭 함께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부모와 함께 걷는 이 길이 아이의 정서와 훗날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해서다.


오늘은 마을의 작은 성당이 많다.

성당에 들러 방명록 쓰는 걸 잊지 않고, 2016년 7월 29일 나의 희원을 적었다.


하나. 이 길을 걷게 해 주셔서 감사함과, 둘.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 마지막으로 이 길을 배경으로 쓰는 나만의 소설을 완성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직 소설은 완성하지 못했지만, 드라마 혹은 영화 극본은 완성되었으니 순례길을 걸으며 희망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꼭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싶다. 길을 걸으면서 마음속 뜨겁고 절실한 무언가를 매일 다짐하고, 매일 희망하면서. 한 달이라는 긴 여정 끝에 도달하게 될 산티아고 대성당(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처럼 나는 꿈에 한 발짝 다가가는 게 아닐까.

이번에 만난 작은 성당에서는 시간차를 두고 뒤따라 오는 일행, 베드로에게 글을 남겼다.

나중에 물어봤지만 이 방명록은 못봤다고 한다.

해가 점점 떠오르고 시냇물은 졸졸졸 흐르고,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호사를 누린다.

그러다 형형색색의 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초록색, 파란색 집 색도 그 집주인의 개성처럼 각양각색이다.

창고 앞에서 문을 닫는 스페니시 할아버지와 그 옆을 지켜주는 충견 한 마리.

어쩐지 이 사진이 만화나 영화에서 본 장면처럼 선연하게 기억에 남는다.

드디어 동화 속에 나올법한 예쁜 마을, 라스 헤레 리아스(Las Harrerias)에 도착했다. 여기엔 프로젝트 앤 브리지(Project & Brigid)라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리처드가 순례자를 위해 도네이션으로 운영하는 Work shop이 있다. 리처드는 Project Director로 전 세계 다양한 곳을 여행하며 이런 프로젝트를 펼친다고 했다.

프로젝트 앤 브리지에서는 오전 7시와 오후 6시에 명상 요가를 진행하고, 함께 영화 보기, 요리하기 등등 순례자 및 여행자 각각의 고유한 경험을 서로 나누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리처드는 자신이 여행을 다니며 경험했던 것이면 그게 무엇이든. 여행을 하지 못하는 이들과 혹은 다른 경험을 가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해 Global impact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의 선한 영향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길 바란다.

프로젝트 앤 브리지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는 순례자들이 그림이나 글을 쓸 수 있도록 도화지와 펜, 파스텔이 놓여 있었다. 순례자는 여기서 소원을 적어 리처드가 프로젝트 앤 브리지 앞에 마려해둔 Dream Tee에 걸어놓는 듯했다. 그렇다면! 나도 앉아 그림 낙서(?)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배워둔 캘리그래피로 보고 싶은 가족과 친구들의 안위를 적고 소원을 뒤이어 적었다.

뒤로 시냇물이 흐르고 Dream Tree가 보인다. 많은 순례자들이 자신의 꿈을 적어서 나무 가지가지마다 꽂아두었다. 나도 나의 소원을 빼곡히 적은 종이를 Dream Tree에 달았다. 나의 소원이 대단한 것들은 아니지만. 꼭,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혼자 그림놀이를 하고 있자니 나타난 여자 순례자, 이탈리아서 온 로라였다. 작년에 힘들었고 릴랙스를 하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게 되었고, 순례길 엣에서 매일 마주하는 태양, 비 온 뒤의 무지개 그리고 새로운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고 했다.

리처드와 로라에게 사람책 인터뷰를 해준 보답으로 캘리그래피를 써주고,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리처드가 키우는 멍한 눈빛의 강지도, 안녕!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만나자꾸나.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리처드처럼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project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에 영감을 받았다. 리처드와 로라를 사람책으로 읽고 나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아직, 오늘 목적지까지 갈 길이 멀다. 서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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