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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Jun 05. 2020

생존 일지 01

_살아있다


2020년 3월, 이 곳은 지구. 지금 인류는 바이러스에게 점령당했다.  

이거 뭔가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만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하긴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은 상상한 가능성을 풀어놓은 것이니, 지금 일어나는 일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일어날 법하다면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겠지.  


다섯 번째 빨래를 널고 여섯 번째 빨래를 돌리는 사이 욕조에 뜨뜻한 물을 받았다. 말이 뜨뜻이지 아이들은 들어가기 힘들 정도의 뜨거운 물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점점 뜨거운 물을 좋아하게 됐다. 저녁이 되면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이 아픈 날도 있고 관절 마디마디가 화끈 거리는 날도 있는데 웬만한 통증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완화된다. 일시적인 효과긴 하지만 그 잠깐의 위로가 얼마나 필요한지.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시원하다, 시원하다.” 하시던 어르신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생각보다 금방 왔다. 남편은 일하는 중, 아이들은 네모 아저씨가 돌봐주고 있다. 첫째인 민트의 주도하에 모두 스키, 스노보드 -동계올림픽 종목-의 선수들을 만들고 있다. 네모 아저씨, 아저씬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잠시의 휴식 뒤 다시 빨래를 널고,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3월 12일, 유럽과 미국까지 걷잡을 수 없이 확진자가 늘어나자 코로나 19에 대해 팬데믹이 선언되었다.

그 주 금요일, 바이에른 주에 부활절 방학까지 이어서 장장 5주간의 휴교령이 떨어졌다.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 다녀오려 했는데 피곤해 낮잠을 자버리는 바람에 오후에서야 급하게 장을 보러 갔다. 휴지가 놓여 있어야 하는 선반은 역시나 텅텅 비어 있고, 정육점 코너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줄 서서 고기를 사보긴 또 처음이라 신기하면서도 착잡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기를 살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지난 2개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지난한 싸움에 대해 줄곧 소식을 들었다. 뉴스로 또 가족과 지인들의 육성으로. 이곳은 이제 시작인 건데 어쩐지 이미 패잔병이 된 것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들어서 괜히 와인도 사고 탄산음료도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진국씨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두 팔 걷고 탕수육을 튀겨 주었고 전쟁의 서막을 만찬으로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평소 잘 주지 않는 사이다도 한 잔씩 줬더니 분위기가 흥청거린다.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다정하게 서로를 격려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빈이 내 옆에서 자고 있다. 옆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마빈의 가장 이쁜 모습을 보면서 기분 좋게 하루를 깨우는데, 옆 방에서 남편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빈이 쉬했어...

아, 상쾌한 아침, 이 무슨 청천벽력.


옆 방에 가서 보니 해야 하는 이불 빨래 4개. 어제 돌리려다 내일 하지 싶어 뒀던 일상 빨래 2번까지 해서 총 6번의 빨래를 돌려야 하는 미션이 놓여 있었다. 매트리스 커버, 매트리스 시트, 이불 2개. 가장 적게 젖은 이불부터 오줌이 묻어 있는 부분을 애벌빨래하여 얼른 돌려놓았다. 이제 밤에 실수는 안 하겠지 싶어서 방수포를 깔지 않은 방심죄로 매트리스까지 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방향제 뿌려서 말려두고 아침을 차렸다.

아침 상 앞에 앉기 전부터 민트가 자꾸만 속이 안 좋다고 하길래, 속이 비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방울토마토도 먹이고 자꾸만 뭘 먹였다. 걔가 그러는 걸 보니 오줌 빨래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자각하지 못한 내 증상도 느껴졌다. 두통이 있고, 메스껍다. 아침식사를 다 하고 나서도 민트는 속도 좋지 않고 컨디션도 좋지 않은 것 같다길래 누워서 쉬라고 해 두고 가족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누워있던 녀석이 엄마 아빠를 소리쳐 부른다. 왜 그러냐 물어도 자꾸만 불러서 가 보았더니 새로 깔아서 정리 해 둔 이불에 토사물이 흩어져 있고 자기 팔에도 자기가 게워낸 것들이 묻어 있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민트가 울먹인다.

나 코로나야? 나 죽는 거야?

증상이 체하거나 배탈이라 아니라고 괜찮다고, 게다가 코로나라고 해도 아이들에게는 위험하지 않다고 달래고 다시 엉망이 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민트는 욕실로 보냈다. (근데 왜 굳이 새로 정리 해 둔 안방 침대에 누워 있었던 거니...) 빈 속이라 그랬던 게 아니라 무언가 탈이 났던 모양이다. 추가된 이불 빨래를 세탁실로 옮기고 다시 새 이불을 펴고 점심 차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빠랑 소파에 앉아 있던 쪼꼬가 왁, 먹은 걸 게워냈다. 그러고 보니 유치원 알림판에 “Magen-Darm Virus” 라 쓰여 있던 게 생각났다. 장염. 애 셋을 키우면서도 장염은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친구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물었더니 지난겨울에 딸이 한 달간 장염을 앓았다는 친구가 줄줄줄 행동지침을 말해준다. 아, 한 달이라고? 설마, 이거 한 달 가는 거 아니겠지? 방학 내내 삼식이 네 명 먹여 살리면서 병수발까지 들어야 하는 거야? 암담하다. 일단 두 놈을 씻기고 눕히고 나자 나도 기진했다. 아까부터 좋지 않던 속에 화장실을 갔더니 애들과는 달리 밑으로 좌르륵. (너무 더럽나? 이해 부탁드립니다.) 결국 멀쩡한 두 분 남겨두고 나도 드러누웠다.  



뜻밖에 생긴 이 긴 방학에 진국과 나는 각자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진국은 아이들과 관련된 것들로 큰 녀석의 독일어와 축구실력 향상, 둘째의 한글 떼기가 목표였고, 나는 미루고 미뤄 뒀던 집안일들이다. 이를테면 가구 위에 쌓인 묵은 먼지 떨어내기, 창문 닦기, 밀린 다림질, 거미줄 제거, 바느질 등... 5주간 다섯 명이 매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반찬도 좀 해놔야 했다. 미루고 미루던 독일어 학원을 다시 등록하려고 알아보던 차에 이 난리가 터진 거라 결국 기약 없이 학원도 못 가게 됐는데, 갈 수 있을 때는 그렇게 가기 싫더니 또 못 간다니 왜 이리 아쉬운 건지. 집에서 혼자 독일어 공부? 매일 글 한 편?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현실은 우리 집 가정부. 그 첫 판부터 애들 아프고 나 아프고 엉망진창.


좀 쉬고 정신을 차려 내려와 보니 진국씨는 멀쩡한 막내와 함께 떡국을 잘 끓여 먹고 둘이 잘 놀고 있었다. 아픈 애들과 나는 일단 끼니를 거르기로 하고, 내 부엌 원상태로 돌려놓고 침실로 올라갔다. 먼저 들어가 있던 진국씨, “나도 속이 안 좋네? 떡국을 먹지 말 걸 그랬나?” 그 한 마디에 꾹꾹 눌러 담고 있던 마음이 와르르 쏟아졌다. 애처럼 줄줄 우는 나를 보고 진국은 궁금증 95%와 호기심 5%의 표정으로 자꾸만 왜 우냐고 묻는다.

너까지 아프면 어떡해!

마음의 소리를 접어두고 주절주절 나를 설명해 보려 하지만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정신없고 서러운 집살이의 첫날이 마무리됐다. 아이들 옆에 토할 수 있는 통까지 챙겨놓고 잤는데 다행히 아무도 토하지 않았다. 다만 진국씨가 밤새도록 위로 아래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지난 금요일, 이 곳 바이에른 주에는 통행 제한령이 떨어졌다. 어디까지는 되고 어디까지는 안 되는 건지 아리까리 하던 차에 아주 깔끔하게 선을 그어 주셨다. 생필품을 파는 상점들과 의료에 관련된 기관들, 직장에 가는 것 가능하지만 충분한 거리를 둬야 하고, 실외 스포츠와 산책은 가능하지만 가족, 반려견까지만 동행할 것 등의 행동 지침이 떨어진 것이다. 반복적으로 강도 높은 제한이 생기고 그럼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언제 끝날지 기약은 없는 이 상황이 표현하지 않아도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추운 날이지만 따뜻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삼형제와 아빠
마당에서 자리 깔고 도박 중?


뜻밖의 고양이 손님과 쓸쓸한 둘째의 뒷모습



여기까지 쓰고 “좌골신경통”으로 몇 주가 고통을 견디는 과업으로 휙 지나가고, 아직도 완치되지 않아 좀 절룩거리면서 일상에 적응해 갔다. 그 간의 생각들, 생활을 낱낱이 고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한 달 반 이상을 보냈다. 집에 갇혀 있었지만 빛나는 세월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초근접하여 살피며 너희들은 참 아름답구나, 하지만 우리 사이엔 거리가 필요해, 라며.


워낙 화려하게 시작해서 조금 안정을 되찾고 나자 진국과 나는 아이들에게 온갖 것을 제공했다. 과학교실, 미술교실, 베이킹 교실, 달고나 만들기, 허수아비 만들기, 부활절 기간도 놓치지 않고 우리끼리 계란도 꾸미고, 한국에서 그렇게 하고 싶었던 홈스쿨링을 강제로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잘 해냈다. 덕분에 쪼꼬는 한글도 거의 마스터해서 “글자를 보면 저절로 읽어져!”라고 간증하기에 이르렀고, 그 옆에서 “나도 나도” 하던 마빈은 뜻하지 않게 이른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시간을 보내는 게 목적인 말뿐인 공부이지만. 제일 고전을 면치 못한 건 민트인데, 독일에서 유아 시절을 보내지 않았고, 부모도 토종 한국인이다 보니 독일어로 혼자 공부하는 일이 곤욕이라,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서 학교 가고 싶다,를 입에 달고 지낸다. 그래도 꾸역꾸역 맡은 것들을 해 내는 걸 보면 대견하기도 안쓰럽기도 한 우리 장남.


어느 날은 유치원 선생님들이 방문했다. 부활절 선물과 색지로 오린 빈 하트를 하나씩 들고, 오랜 기간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숙제"라고는 하지만 심심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거리를 들고 와 준 것이다. 각자 하트를 꾸며서 유치원 우체통에 넣으라고 했다. 잘 지내냐는 물음에 "아이들이 없어서 심심해"라는 대답에 진심이 느껴졌다. 비록 멀찍이 떨어져서 잠시 나눈 대화라도 아이들은 좋았나 보다. 또 다른 날은 고양이 손님이 찾아왔다. 워낙 고양이를 좋아하는 민트와 뭐든지 좋아하는 마빈, 그리고 형과 동생이랑 함께 하는 게 좋은 쪼꼬는 한참 동안 고양이 친구랑 놀았다. 주인이 있는 고양이 인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열어 놓은 문으로 집 안까지 들어와서 일하고 있던 진국씨를 놀래키기도 했다.


따뜻한 순간, 즐거운 순간, 한계가 오는 날, 울고 싶은 날, 바이러스로 인한 특별한 상황이 아니어도 모두가 늘 겪는 일상일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도 어른들도 점점 적응을 해 가면서도 이 창살 없는 감옥이 언제 끝날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오늘 5월 5일, 어린이 날을 기념으로(독일인들이 알리가 없겠지만) 정부 발표가 있었는데, 점진적으로 봉쇄를 풀 예정인가 보다. 당장 오늘부터 놀이터를 다시 갈 수 있게 되었고, 다음 주 월요일 졸업학년부터 개학하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학교도 유치원도 다시 열게 될 것이다. 식당, 상점들도 점진적으로 정상영업을 시작하고… 이렇게 감옥생활에 슬슬 자유가 깃드는 것이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러다 또 확진자가 폭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제껏 조심하며 애썼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까 봐.


그래도 희망으로 눈을 돌려보려 한다. 살아 있으니 다행이라고, 그간의 모든 우여곡절은 우리 모두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으니 된 것이라고.

함께 살아 있자.


 아이들이 그린 마음로 채워진 유치원 앞

20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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