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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Jun 04. 2020

 IKEA 표류기

뮈넨 바보 이야기_01

한국에서도 똑순이는 아니었지만 독일 적응기에는 유난히 "바보짓"이 많이 기록된다.

세 아들이 혼을 빼놓기 때문이라고 핑계 대기에는... 그 빈도가 너무 잦아 말잇못...


몇 가지 분야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길 잃기, 이다.

독일 구석구석 포진해 있는 IKEA. 여기만 유독 사람이 많은 건 아니겠지.


이 곳이 어디냐, 이제는 한국에서도 가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멀지 않은 과거엔 그림의 떡이었던 바로, IKEA 다. 서울 경기권에 살지 않은 지방 사람이었기에 명성만 들어 보았지, 가 본 적은 없었던 바로 그 IKEA, 첫 방문! 독일에 넘어온 뒤로 거의 살고 있는 마을에서 갇혀 지냈기 때문에 IKEA 방문은 아주 신명 나는 일이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흐린 주말, 겨울 취미가 인테리어인 독일인들, 많이도 모였다. 저 넓은 공간이 북적거리는데, 시골장터를 방불케 한다. 한 달 먼저 독일 생활을 하며 필수 품목들을 사고 조립했던 남편은 이미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고, O마을 촌년(응? 나?)에 비하면 IKEA 전문가였다.   


오기 전부터 남편은 IKEA 핫도그에 대해 말해 왔다. 특별하다도 아니고, 맛있다도 아니고, 그저 핫도그를 먹었다고...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내 구미를 당겼는지 모르겠다. 말로만 듣는 IKEA 핫도그는 마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도 되는 양 [먹어 볼 것! List] 상위권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점심 즈음, 애매하게 도착한 우리는 배고픈 아이들(혹은 그들의 엄마) 입막음해야 했고, 남편은 거침없이 아이스크림과 핫도그를 파는 쪽으로 가서 능숙하게 구매한 뒤 우리에게 하나 씩 들려주었다. 망설임 없이 당당한 그 걸음걸이! 아, 진국씨가 이렇게 멋있었던가?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는 나에게 핫도그를 하나, 아이들에게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하나 씩, 본인도 아이스크림 하나.


남편은 얼른 아이스크림을 먹어 치우고 아이들과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있겠다고 말하더니 세 아들이 타고 있는 카트를 밀고 사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허겁지겁 핫도그 먹기에 바빠서 손 흔드는 아들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핫도그 하나를 해치우고 나니, 포만감에 만족스러웠다. 서둘러 매장 안 쪽으로 들어갔는데,

아뿔싸!

넓어도 너무 넓었다. 한양서 김서방 찾기를 독일에서 해야 하다니...

들고 있던 핸드폰을 보았다. 아직, 한국 통신사로 개통되어 있었고, 바보는 무료 와이파이도 연결할 줄 몰랐다. 다급한 마음에 연결을 시도해 봤지만, 역시나 실패.


'이런 부엌, 마음에 든다.'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점점 빨라지던 걸음은 결국, 달음질이 되었다. 부끄러움은 사치, 큰 소리로 아이들 이름을 마구 불러댔다.

민트, 쪼꼬, 마아비이인~~~!!!


뛰면서도 계속 머리를 굴렸다. 계속 이렇게 뛰어다닐 것인가, 다른 방법을 강구할 것인가. 가다가 가다가 Staff 조끼를 입은 사람에게 물었다. "Excuse me, Can you speak in English?" 돌아오는 대답.

Nein!(아니.)


몸만 독일에 와 있을 뿐이었지, 겨우 보름이 채 안되게 살았는데 그동안 쌓은 경험치는 세 아들과 집, 놀이터, 집 근처 마트, 마을 산책이 전부였다. 세 아이를 하루 종일 집에서 캐어하는 것과 갑자기 넓어진 집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독일에 대해서라고는 눈곱만치도 몰랐고, 할 줄 아는 독일어는 Ja(네), Nein(아니요), Bitte(제발요), Ich weiß nicht(몰라요)가 다였다. 아, 0~10까지도 알았던가?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어쩌지, 고객센터로 가서 방송을 해 볼까. 핸드폰이 되었으면 좋겠다, 와이파이는 어떻게 연결하는 거지. 정신없이 다니다 이번엔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Did you see three Asian boys(인종에 대한 편견 같은 거 안중에 없었다, 우리 애들을 이 사람들이 알아듣게 뭐라고 표현한단 말인가?) and their father?"

No!

아, 독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단호한 걸까...


그 넓은 매장을 걷고 뛰고 하다 보니 아까 봤던 그 자리가 나왔다. 이대로는 영원히 IKEA를 돌다 지박령이 될 지경이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대안은 핸드폰.

'독일에서 남편이 건 통화 기록이 남아 있을 거야, 아무한테나 빌려서 전화를 해보자.'

통화 목록을 아무리 아래로 내려 봐도 남편 번호를 찾을 수가 없다. 거의 울기 직전이 되어서 S* 텔레콤 로밍 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기나 긴 자동응답의 터널을 지나서야 "로밍을 하고 싶은데요, 지금 너무 급해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요금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독일 땅 밟은 지 보름 만에 미아가 되게 생겼다. 여권도 없고 여권이 없으니 비자도 없고 지갑도 없고 지갑이 없으니 신분증도 없다. 지금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진국씨를 찾아야 했다. 전화번호도 모르니 깨톡에서 제공하는 보이스톡을 이용해 보았다.


로리로 리리 띠로리로리~

한 번.

띠로리로 리리 띠로리로리~

두 번.

띠로리로 리리 띠로리로리~

세 번.


그대여, 전화를 받아줘... 연애하던 시절에도 이렇게 애절했던 기억이 없다. 하지만 결국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뛰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제발!' 그렇게 한 백번쯤 속으로 외치면서 뛰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남자아이 셋이 타고 있는 카트가 보인다.


아.....

이제 미아가 되지 않아도 되겠구나.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어디든 갈 수 있겠구나. 안도감에 미소가 지어졌지만, 곧 밀려오는 민망함에 조금 일그러졌다. 어떤 표정이었을지. 아마, 한 시간 남짓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헤어져 있던 시간. 시곗바늘과 상관없이 마음의 시간은 십 년쯤 흘러간 것 같았다. 남편은 안도와 황당함과 원망을 전부 담은 얼굴로 다가왔다. 그래도 웃어줬다.


고마워, 진국씨, 나 버리고 집에 가버리지 않아 줘서.


네, 이런 거실을 만들어 보려고 했답니다. 물론 실패했고요.


핫도그 하나 먹으려다 가구는 하나도 못 사고, 국제 미아 될 뻔한 이야기.

허나, 이것은 그저 서막에 불과했으니...

뮌헨 바보는 계속 길을 잃는다.

이 정도라도 먹느라 그랬으면 덜 억울했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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