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기세로 수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유럽 내 인종차별은 극에 달해 있다. Yellow Virus라고 불리며 동양인 기피와 조롱에 아주 그럴듯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독일은 유럽 내 최대 확진자 수를 보유했고, 그것도 우리가 사는 바이에른주에 밀집 분포되어 있다.
마빈은 일주일 내내 열이 나고 기침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닐 것이 거의 확실했지만, 혹시나 하는 우려와 주변의 시선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유치원과 학교에도 아픈 아이들이 많아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열몇 명 있는 아기반 아이들 중 10명이 아파 유치원에 나오지 못했다고 하고, 민트네 반 담임 선생님까지 병가로 이틀을 쉬었다.
하필 이 시국에 쪼꼬의 생일파티가 계획되어 있었고, 장소 예약, 초대장 전달에 오겠다는 답변까지 받아둔 상태였다. 쪼꼬는 생일파티에 대한 기대가 아주 대단했다. 장소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키즈카페였는데 그 규모가 한국이랑 비교가 안 되게 컸고,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라는 뜻이다. 규모가 크든 작든 키즈카페라는 곳은 워낙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고 놀이기구도 모두가 공유하기에 전 세계적인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은 이때 그런 곳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것이 괜찮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남편과 조심스럽게 상의했다. 생일을 미룰까, 장소를 옮길까, 초대한 엄마들 의견을 들어볼까. 생일 파티를 그곳에서 그 날짜에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꺼내자 쪼꼬는 다짜고짜 울음부터 터뜨렸다.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닌데, 그 병은 죽을 수도 있는 병 이래..." 이런 말은 일곱 살짜리 한테 통하는 논리가 아니었다. "집에서 더 재미있게 하자, 이 병이 지나가고 나면 같이 가고 싶은 친구들과 함께 그곳에 꼭 가자."라는 대안도 역시 먹통이었다.
생일파티 1주일 전, 마을 축구클럽에서 지역배 대회가 있다는 공지가 올라왔고, 쪼꼬도 엔트리에 들어갔다. 막내도 아빠도 감기로 앓고 있던 중이라 조금 무리가 됐지만 가서 분위기를 염탐하고 올 필요가 있었다. 축구대회의 열기는 뜨거웠다. 각 마을에서 7팀이 출전했고 선수들의 부모들도 잔뜩 모였다. 모두 붙어 앉거나 서서 자기 팀, 자기 아이를 응원했다. 누구도 나와 쪼꼬가 동양인인 것을 신경 쓰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마을 안 에서야 워낙 자주 보는 사람들이라 티를 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옆에 앉은 우리 팀 아이의 아빠는 "아이들 모두 단 거 도핑 테스트해야 한다."며 농담을 던지더니 쪼꼬가 한 골 넣고 나자 통 크게 '단 거' 한 봉지를 사주기까지 했다. 축구대회에 다녀와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생일 파티를 해도 되겠다고 확신한 것은 동네 친구들이 죄다 몰려온 날이었다. 큰 아이는 민트의 작은 아이는 쪼꼬의 친구인 아론과 말론 형제는(얘네들도 돌림자를 쓰나?) 하교 길에 함께 놀 거라며 우리 차를 같이 타고 집으로 왔다. 좀 있으니 제 집 드나들 듯 서로의 집을 드나드는 친구 둘, 바스티안과 마이키가 찾아왔다. 이로써 사내아이 일곱 명은 온 집안을 휘젓고 몰려다니며 놀았다. 자꾸만 배가 고프다며 부엌으로 쳐들어와 먹을 것을 요구하고는 메뚜기 떼 들처럼 흔적만 남기고 다시 몰려다녔다. 사랑스러운 녀석들...
엄마들도 아이들도 코로나 바이러스 걱정은 크게 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했고 그 일상에 동양인인 우리 가정이 배제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생일파티.
키즈카페 문 앞에서 친구들을 맞이하고 그 부모들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는데 괜스레 울컥한다. 더듬더듬하는 독일어를 기다려주고 알아들어 주는 꼬맹이들이 고맙다. 외우고만 있었지 쓸 일 없었던 "Hast du weh getan?"(다쳤어?) 한 문장으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찍은 사진과 함께 보낸 와줘서 고맙다는 메시지에 아이들이 정말 재밌어했다며, 오늘 수고했으니 푹 쉬라는 답장에 다시 한번 울컥.
다정한 마을 O, 널 떠나지 않겠어, 라며 뿌리내린 터를 단단히 다지는 하루였다.
따뜻한 마음과는 별개로 몸살약을 먹은 것은 열 명의 남자아이들을 세 시간 동안 데리고 있었던 사람의 마땅한 도리.
2020.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