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뉴스에서 '노벨 문학상'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한강, 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곧 생소한 헝가리 작가의 이름이 이어져, 순간 흠칫 놀랐다.
벌써 1년이 흘렀구나.
한국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아시아 최초의 여성 작가.
한강.
그 소식이 온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고, 그 소식을 전하며 그를 궁금해하는 지인들에게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듯 책들을 빌려주었다. 그가 도달한 곳에 나도 함께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꿈에 대신 가 준 그가 고마웠다.
독일 서점에도 한강 작가의 코너가 따로 만들어져, 볼 때마다 반가워 사진을 찍었고, 꼭 읽어야지 다짐을 하며 독일어로 번역된 그의 책을 사기도 했다. 결국엔 다 읽지 못했지만.
외국 생활의 초반부터 K-문화가 승승장구해 주어 덕을 많이 보았지만, 그 해 수상 소식은 그 어느 때보다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벅찼던 10월이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에 놀라, 차분히 하루하루를 돌아보니 아득히 먼 것도 같다.
시간이란, 인간의 감각으로 헤아리기에, 이 작은 뇌로 이해하기에 너무나 심오한 것일까.
다시 10월.
내내 흐린 날들이 이어져,
어둠에 장막에 가려졌던 단풍을,
친구의 시선을 빌려 찾았다.
피곤하다, 우울하다, 춥다.
내내 그런 생각만 하느라 온통 물든 세상을 놓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뭐 먹지?"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고민들이 나날을 지워가는 것만 같다.
멈춤이 필요하다.
기억해야 하는, 기록해야 하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맘을 먹고 멈춰야 한다.
매번 치료소(Praxis)에 젤 처음으로 도착하는 아이가 환한 미소를 머금고 달려 들어온다.
눈을 반짝이며 두 손에 쥔 것을 보여준다.
"말밤(Kastanien)이에요!"
"오, 멋지다!! 어디서 주웠어?"
"우리 동네에 마로니에 나무가 몇 그루 있어요. 거기서 주었어요!"
그러면서 그 작은 손에 들려 있던 밤 다섯 알을 건네준다.
말밤을 받아 들고, 어찌할 줄 모르는 나한테,
"제가, 방금 주운 거예요! 선물이에요!"
그렇게 아이가 그러모은 한 줌의 행복을 품고, 하루를 살았다.
가지지 못한 것들을 세어보기엔
참으로 풍성한 삶이다.
가다가 지치면, 맘을 먹고 멈춰 서자.
그 가득 찬 순간들을 기억하고, 누리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