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말하지 않는 사이
나에겐 말 못 할 고민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금방 화해하기도 하는 그 시절,
남자아이들은 정말 자유로워 보였다.
큰 소리로 싸우고, 뒹굴며 결투하고,
다음 날엔 아무 일 없던 듯 공을 차는 모습을 보면
나는 왠지 모르게 부러워졌다.
‘왜 나는 여자일까?’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한참 했었다.
하지만,
나는 싸우지도 않았는데
말을 안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애는 미선이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첫 등교 날부터 친했다.
같은 동네, 같은 학년.
함께 걸어가고, 같은 반에서 웃고,
학교가 끝나면 서로의 집을 번갈아 오가며
하루의 반 이상을 함께 보냈다.
그런 미선이와—
우린 아주 길게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시작은 2학년 어느 봄날.
평소처럼 미선, 미선 언니, 그리고 내가 줄 맞춰 학교를 가던 길이었다.
그날따라 언니는 뭔가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장난처럼 게임을 제안했다.
“오늘부터 누가 먼저 말하나 보자.
먼저 말하는 사람이 지는 거야.”
우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말, 그 순간부터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장난이었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킥킥 웃고
얼굴만 봐도 터져 나올 듯한 말을 꾹 참았고
종이쪽지를 주고받으며 의사소통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난이 멈추질 않았다.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도
우린 끝내 먼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미선 언니는 중학생이 되었고
우리도 4학년, 5학년,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말은 안 했지만
우린 매일 같이 등하교를 했고
함께 걷고, 웃고, 놀고, 자전거도 같이 탔다.
사람들은 우리가 사이가 안 좋다고 오해했지만
정말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말없이도
서로를 제일 잘 아는 친구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어떤 ‘말보다 강한 약속’ 같았다.
우리만의 이상한 게임,
서로를 확인하는 특별한 방식.
그리고 그 침묵의 벽 뒤엔
분명히 말하지 못한 많은 감정이 있었다.
미안함, 그리움, 친밀함, 그리고 사랑.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우린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하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그 침묵이 끝났다는 것도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게 된 것이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어릴 적,
미선과 했던 그 이상한 침묵의 게임은
어쩌면, 말보다 더 깊은 마음의 언어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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