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금 넘어오면 다 내 거야
금 넘어오면 다 내 거야
선생님은 또다시 짝을 바꾸셨다.
책상은 미끄러지고 아이들은 뒤섞인다.
이제는 익숙하다 싶을 즈음,
내 이름과 함께 다시 들려온 이름.
“미순이는… 옥순이랑 짝 하자.”
아... 또 옥순이다.
불편한 숨이 가슴 안에서 맴돌았다.
책상이 붙고,
그 애가 터벅터벅 걸어와 앉더니
갑자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조그만 칼이었다.
쓱, 쓱.
책상 가운데를 정확히 가르며 칼질을 했다.
얇지만 분명한 선이 생겼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 넘어오면 안 돼.
금 넘으면 다 내 거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나는 금을 절대 넘지 않으려 애썼다.
공책 한 귀퉁이, 연필심 하나도 그 선을 넘지 않게.
나름 정직하게, 조심스럽게
그 애가 만든 경계 안에서만 움직였다.
그런데 말이다.
속으로는 묘하게 억울하고,
이건 아닌데 싶었지만
딱히 불만을 말할 용기도 없었다.
그 애는 나보다 키도 크고,
목소리도 컸고,
무엇보다 욕을 기가 막히게 잘했다.
“야, 쟤 진짜 O 같지 않냐?”
“아, 쫌. 개같이 굴지 마.”
그 말들은
나와는 먼 세계 같았다.
그런데 집에 오니,
그 말들이 자꾸 맴돌았다.
왜 그렇게 찰지고, 입에 착 붙는지.
나는 몰래
거울 앞에 서서
입을 모양내며
조용히 따라 해 봤다.
“야, 진짜 O 같지 않냐...”
혼자서도 좀 민망했지만,
뭔가 속이 시원했다.
말하지 못했던 일,
울컥했던 순간들이
그 단어 하나에 응축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금을 넘지 않았고,
욕도 소리 내 말하지 않았지만
옥순이라는 세계에
조금씩 발을 디뎠던 것 같다.
그 아이는 거칠지만
솔직했고,
무례하지만
은근히 따뜻했다.
어쩌면
그렇게 투박한 말들 뒤에
그 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선을 긋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르지만
서로를 보며
조금은 배워가고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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