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골목을 걷다

22화

양복을 입은 사람들


내 기억 속에 양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든 사람들이 자주 우리 집에 왔었다.

어린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도, 왜 오는지도 몰랐지만,

그들이 오기만 하면 엄마 아빠의 얼굴이 굳어졌던 건 분명히 기억난다.


“또 왔네.”

엄마는 문 앞에서 속삭이듯 말하셨고,

아빠는 한숨을 쉬며 마당 끝으로 나가시곤 했다.


나는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아

문틈 사이로 조용히 그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까만 가죽 가방, 반듯한 머리, 딱딱한 말투,

어딘가 시골과는 어울리지 않는 도시 냄새가 풍겼다.


그들은 집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항상 마당에서, 마루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고는

한참을 서있다가 돌아갔다.


엄마는 그들을 싫어하셨다.

“그 땅은 니 아버지가 힘들게 일해 산 거야. 못 팔아!”

그 말을 나는 여러 번 들었다.


당시엔 몰랐다.

그들이 교회 관계자라는 걸,

그 땅이 곧 교회 자리가 된다는 걸.


1년 가까이 우리 집을 드나들며

부모님을 설득하던 그들은

결국 아빠의 마음을 돌린 모양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빠가 그 땅을 팔기로 결정한 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였고,

그 결정에는 분명 무언가 깊은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 땅은 원래 우리 가족이 살던 초가집이 있던 자리.

내가 태어나 처음 울음을 터뜨린 곳.

엄마가 장독대 옆에서 된장을 뒤적이시던 모습,

아빠가 저녁마다 장작을 패던 마당,

언니가 옹기종기 동생들을 모아 동요를 가르치던 마루.


그 모든 풍경이 있던 그 자리는

이젠 근사한 교회가 되었다.


이따금 교회 앞을 지날 때면

문득 그 양복 입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문 앞에 서 있던 모습,

그때의 우리 부모님 얼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루 끝에 앉아 있던 나.


사람들은 말한다.

“참 멋진 교회다.”

나는 그럴 때마다 혼자서 속으로 생각한다.

“맞아요. 우리 가족의 시간이 스며든 교회랍니다.”



---


#마루 끝에서 본 세상 #마음의 골목을 걷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 #교회가 된 집 #어린 시절기억 #시골집과 교회 #부모의 결정 #시간의 흔적 #브런치에세이 #따뜻한 기억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2화 마음의 골목을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