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대문 앞에서

18화. 저녁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들

18화. 저녁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들

하굣길이 조금씩 짧게 느껴질 즈음,

어둑해지면 마음 한편이 허전해졌다.

낮엔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하며 잊고 있다가도

저녁이 되면 불쑥, 가족들이 떠올랐다.


동생들 목소리,

아빠가 신문을 넘기는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의 손끝.

언제나 나보다 늦게 밥을 먹던 그 손길이 문득 그리웠다.


그럴 때면 나는 가만히 이모네 식당으로 갔다.

손님이 드문 시간엔

카운터 한편에 앉아 숙제를 펼쳐두었다.

불빛이 따뜻하게 등을 덮었고,

이모가 반찬을 정리하거나 주방을 오가며

“좀 있으면 문 닫을 거야, 조금만 기다려~” 하고 말해주곤 했다.


이모는 내게 엄마는 아니지만

이모 옆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그냥 조용히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했다.


“오늘은 뭐 먹고 싶니?”

이모는 그렇게 물으며

오빠의 야식까지 미리 준비했다.

“여기서 만들어 가자, 선영아. 오늘은 떡볶이 할까?”


이모는 음식을 참 잘했다.

재료도 많지 않은데

항상 맛있는 냄새가 났고,

손이 빠르면서도 정갈했다.


나는 반찬통을 정리하던 이모를 바라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모… 엄마랑 이모는, 내 나이 때 어땠어요?”


이모는 잠시 멈칫하더니

한 박자 늦게 웃었다.

“글쎄… 엄마는 조용했지.

나는 말이 더 많았고.

엄마는 할머니 심부름도 잘하고, 책도 참 좋아했어.”


“둘은 안 싸웠어요?”


“엄마랑 나는 사이가 좋았지.

근데 위에 언니들 많잖아, 다들 자기주장 세고…

그 사이에 껴서, 우리 둘은 오히려 편했어.”


나는 웃었다.

“이모들 많아서 좋았겠다…”


이모는 내 머리를 가만 쓰다듬었다.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었어.

근데 그렇게 언니들이 많으니까,

누군가 하나쯤은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이 있더라.”


그 말이 왠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지금의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윤하나 하영이,

아직은 서툴지만 곁에 있으려 애쓰는 친구들.

그리고 오빠, 이모…


나는 이모가 준비해 준 따끈한 떡볶이 그릇을 들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마워요, 이모. 진짜 따뜻해요.”


그날 밤,

창문 너머 겨울 공기가 차갑게 스며들었지만

방 안은 오래도록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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