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의 시점
제10화. 아직은 말할 수 없는 마음
정숙의 시점
윤호 씨가 서울로 떠난 지 며칠이 지났다.
마루 끝에 잠시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사람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는 것만 같았다.
조용하고 점잖은 말투,
가끔 웃을 때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던 얼굴.
그 모든 게 머릿속에 자꾸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틈만 나면 내게 슬쩍 물으셨다.
“그 사람, 인상 괜찮았지?”
“너랑 말도 잘 통하던데?”
“서울살이 힘들지 않게 해 줄 것 같더라.”
나는 얼버무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뺨이 화끈거렸다.
말끝마다 숨은 뜻이 느껴졌다.
하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부끄러움이 먼저 앞섰고, 어쩐지 가슴도 간질거렸다.
며칠 뒤엔 언니들도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왔다.
오랜만에 집안이 북적였다.
큰언니는 바느질을 하면서 나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정숙아, 그 서울 총각… 말이 잘 통하더냐?”
작은언니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
“그래도 우리 정숙이, 벌써 혼처가 오다니. 시집 먼저 가게 생겼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입안에 있던 대추씨만 굴리며, 괜히 된장독 쪽을 바라봤다.
그들이 하는 말에 싫지는 않았지만,
정작 내 마음이 어떤지,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윤호 씨가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참 바르고 반듯했다.
많이 말하진 않았지만, 걸음걸이나 눈빛에서
배려심이 느껴졌고, 조심스러웠다.
식사 중에도 나보다 어머님 손부터 챙기고,
처제들과 처남들까지도 빠짐없이 눈길을 주었다.
무엇보다… ‘서울 사람’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낯설고 멀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 멀고 낯선 곳으로 내가 데려가질 수 있을까 하는 설렘 같은 것.
그 사람 곁이라면, 그 바쁜 도시도
조금은 덜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사랑인지… 호감인지…
아니면 그냥 어린 마음의 동경인지
나는 그 경계를 아직 잘 몰랐다.
어머니는 밤마다 내 방 등잔을 살며시 열어보며
“편지 오면 내 먼저 안 볼 테니 걱정 말고…” 하고 웃으셨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정말로 언젠가 윤호 씨에게서 편지가 오면
그 종이를 몇 번이나 접었다 폈다 할 것만 같았다.
그 밤, 나는 몰래 베갯잇을 끌어안고 생각했다.
그 사람 손이 따뜻했을까.
서울은 지금 얼마나 추울까.
그 사람도… 나를 떠올리고 있을까.
그게 설렘이었는지,
아니면 조용히 피어나는 그 시절의 사랑이었는지
나는 아직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사람을 떠올릴 때, 나는 괜히 웃게 된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