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의 시점
제11화. 아무도 없는데 얼굴이 붉어졌다
정숙의 시점
편지를 보낸 지 사흘째 되던 날, 또 봉투가 도착했다.
이번엔 내가 직접 마당으로 나가 우체부 아저씨에게 받았다.
봉투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땐, 괜히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데도, 가슴이 콩닥콩닥 소리를 냈다.
봉투를 조심스레 열었다.
익숙한 필체, 단정한 문장.
윤호 씨의 두 번째 편지였다.
처음 몇 줄을 읽고 나서, 나는 얼른 봉투를 덮었다.
괜히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가슴 안에서 들썩거렸다.
‘혹시, 다시 그 개울을 저와 함께 걸을 수 있다면
다음엔, 제 손을 살짝 내밀어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세 번, 열 번도 넘게 읽었다.
읽을 때마다 뺨이 뜨거워졌다.
괜히 등을 쭈그리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마치 누가 보고 있는 것처럼.
글이란 게 참 묘했다.
말보다 더 조용한데, 마음은 더 깊이 파고든다.
조용히 속을 뒤흔드는 그런 글이었다.
윤호 씨는 동네에서 늘 오며 가며 보던 오빠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 오빠들은 마주치면 웃고, 장난도 하고,
어쩌다 내 치맛자락을 발로 슬쩍 건드리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성큼 돌아서곤 했는데,
윤호 씨는 그런 법이 없었다.
손끝 하나 허락 없이,
말 한마디 허투루 없이,
늘 조심스레 내 주변을 맴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생각났다.
그 사람의 걸음, 목소리, 그리고
지금 이 종이에 담긴 글씨 하나하나가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무릎 위에 편지를 올려놓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지붕 위로 햇살이 쏟아지고, 바람이 창틈을 흔들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조금 허전했다.
답장을 써야지, 하면서도
나는 편지지를 펴지 못했다.
어떤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무슨 표현이 너무 빠른 건지, 너무 무심한 건지도 잘 모르겠었다.
‘그리운 마음으로’라니…
나는 과연, ‘그립다’는 말을 써도 되는 걸까.
그 말이 입 밖으로는 안 나왔지만,
속으론 이미 수차례 되뇌고 있었던 건 아닐까.
결국 나는 편지지를 꺼내 앉았지만,
속마음 끝까지는 꺼내지 못했다.
또 조심스러운 말만 적게 될 것이다.
그래도 그가 또 답장을 준다면—
그날은, 좀 더 솔직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으며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음엔… 나도 개울까지 다시 같이 걸을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