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손꼽아 기다리는 날

윤호의 시점

제13화. 손꼽아 기다리는 날

윤호의 시점


정숙 아가씨의 답장을 받고부터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흘렀다.

편지는 마치 숨결처럼, 서로의 안부를 데려왔다.

두서없는 날씨 이야기에도, 동네 아이들 소리에도

그녀의 손끝과 생각이 녹아 있는 것 같았다.


서울 장충동, 우리 집 앞 골목에선 매일 똑같은 하루가 이어졌지만

나는 매일이 조금씩 달랐다.

그녀에게 쓸 말을 먼저 머릿속에 적고,

퇴근 후 책상 앞에 앉아 조심스레 펜을 들었다.


어느 날은 종이 한 장을 다 채우고도

“이건 너무 들이댄 것 아닐까” 걱정하며 다시 고쳐 썼고,

어느 날은 단 세 줄만 적고도 마음이 다 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장의 종이로 마음을 나누는 이 시간이,

어쩌면 가장 진심에 가까운 방식이란 걸 처음 알았다.


그러는 사이, 집안 분위기는 어느덧 ‘날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함중(咸中)에 넣을 천이며 비단을 꺼내 손질하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내 손에 닿지도 못하게 하며 조용히 예단 얘기를 꺼내셨다.

큰아버지는 어느 날, 다림질한 양복 윗도리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이젠 인사도 정식으로 가야지. 너 마음이 그쪽으로 굳었으면 말이다.”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못 했다.

다만 손에 들린 편지 한 통을 천천히 접으며,

속으로는 ‘예, 저는 정숙 아가씨 말고는 없습니다’라고 답하고 있었다.


며칠 후, 큰아버지와 나는 정숙의 마을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작은 마을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양복 속주머니엔 정갈하게 접어둔 편지 한 장이 있었다.

정숙에게 보낼 마지막 편지였다.

이제는 말이 아닌 얼굴을 마주하며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기차 안에서 나는 몇 번이고 손수건을 꺼냈다.

땀이 나는 것도 아닌데 손바닥이 축축했다.

큰아버지는 말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정숙 아가씨가… 오늘은 어떤 얼굴로 날 맞아줄까.'


편지로 이어진 정은 종이보다 더 단단했고

내 마음은, 그저 그녀가 나를 받아주는 그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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