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의 시점
제16화. 꽃을 기다리는 손
정숙의 시점
혼례 날짜가 정해졌다.
삼월 마지막 토요일, 마을의 살구꽃이 피기 전날쯤이었다.
어른들은 말을 아꼈지만
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잠든 밤에도 심장이 먼저 알아챘다.
그날부터 집 안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쉴 새 없이 바느질을 하고,
주방에선 며칠째 장작불이 꺼질 줄을 몰랐다.
나는 아침을 먹고 나면
시장에 나가 물고기 값을 물어보고,
천을 사 오고, 꿀엿을 받아왔다.
하루에도 네댓 번, 아니 여섯 번도 더 다녀왔을 것이다.
오며 가며 숨이 찼고, 손은 늘 붉게 터 있었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바빴다.
밤이면 어머니 옆에 앉아
이불 천에 수를 놓았다.
봉황과 꽃, 잎사귀들.
처음 해보는 일인데도
이상하게 바늘 끝이 무겁지 않았다.
언니들도 돌아가며 친정에 와서
솜털며 바느질 거들고, 나를 툭툭 건드리며 놀리곤 했다.
“우리 정숙이, 이제 진짜 서울 새댁 되는 거네.”
“하루 이틀은 울지도 몰라, 그래도 얄미울 만큼 좋을 거야.”
나는 웃으며 대꾸했지만
속으론 그런 말들이 괜히 떨리게 들렸다.
윤호 씨는 그 와중에도 몇 통의 편지를 더 보냈다.
“혼례 날이 다가오니, 멀리 있는 날들이 모두 안개처럼 흩어지네요.”
그런 문장 하나하나가
작은 등불처럼 내 마음속에 들어와 앉았다.
나는 바빴고, 손은 쉬지 않았고,
사람들은 웃고 떠들었지만
그 틈틈이, 윤호 씨 얼굴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그 사람이 이불속 내 손끝을 어루만지는 듯했고,
수놓은 꽃무늬 속에 그 사람 눈동자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혼례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자꾸만 윤호 씨를 떠올렸다.
이제는 편지가 아닌 목소리로,
손이 아닌 품으로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설레었다.
밤이 깊고 불빛만 희미하게 남은 마루에서
나는 방금 꿰맨 이불을 꼭 안아보았다.
그 사람과 함께 누울 이불이었다.
그리움이 점점 무게를 가져
이제는 마음보다 이불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