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여자들만의 밤

정숙의 시점

제17화. 여자들만의 밤

정숙의 시점


이불 세 채와 베개, 솥단지 하나,

자그마한 찬장, 그리고 새로 맞춘 놋수저까지—

살림살이 몇 가지를 광목천에 곱게 싸

형부와 아버지가 직접 머리에 이고, 등에 메고 서울로 올라갔다.


“거기 가면 윤호 씨 어머님이랑 할머님이 다 받아줄 거야.”

어머니는 아침 일찍 아버지의 손에 약과며 찹쌀떡 한 보따리를 들려주셨다.

“말수는 적지만 마음은 곱디곱은 분들이라더라. 걱정 말거라.”


나는 마루 끝에 서서

한참이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허리춤에 걸린 고무신이 덜렁거리며

오솔길을 천천히 사라졌다.


그날 저녁, 어머니와

두 언니들이 친정으로 모처럼 모여들었다.

큰언니는 자정이 다 되도록 호롱불을 끄지 않고 수를 놓았고,

둘째 언니는 부엌에서 식혜를 데워왔다.


방 안엔 여자들의 웃음과 바느질 소리,

그리고 은근한 속삭임이 흘렀다.


“서울 가면 너무 순하디 순하게 굴지 말고,

말은 또박또박해야 돼.”

큰언니가 말했다.

“응, 그렇지만 너무 센 말도 쓰면 안 돼. 시어머니 앞에선 늘 ‘예’ 하고 웃어.”

둘째 언니가 곁들였다.


“밥은 꼭 새벽에 먼저 해. 고봉밥은 안 되지만, 성의는 보여야지.”

“행주 빨래는 꼭 따로 헹구고…”

“윤호 씨가 뭐라 해도 어머님이 싫다 하시면 안 되는 거야.”


나는 웃음이 나면서도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다들 겪은 일이라 그리도 말을 술술 하는 걸까.


어머니는 옆에 앉아 조용히 내 손등을 만졌다.


“아가야, 살림은 서툴러도 되니 마음을 다 해라.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식구 되는 길이니라.”

나는 그 말에 목이 메었다.


어머니의 손은

이불 천을 매만질 때처럼 부드럽고,

바람을 막아주는 지붕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내 방이 아니라,

세 여자와 함께 웃고 울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을 끄고 누웠을 때,

창 너머로 아직 달이 밝았다.

그 아래서,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서울이라는 낯선 집에서도

그 사람 곁에서 단단한 마음으로 서 있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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