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처음 한집이 된 밤

정숙의 시점

제18화. 처음 한집이 된 밤

정숙의 시점


혼례날 아침,

방 안에는 비단저고리 소리가 조용히 스치고

어머니는 앞치마를 두른 채 연지와 곤지를 찍어주셨다.

작은 거울 속 내 얼굴은 낯설고 환했다.


“고개 들거라. 눈을 꼭 감고.”

사방탁자 위에 놓인 분첩에서

붉은 연지를 엄지손톱에 묻히는 어머니 손길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이마와 양 볼 위에 동그란 점이 찍히는 순간,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되는 듯했다.

딸이 아닌, 색시로 서는 시간.


머리에 족두리가 얹히고,

가마 밖에서 장구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들이 앞섰고, 나는 마당에 놓인 가마 안에 조용히 올라탔다.


가마문이 닫히자

세상이 아주 작아진 느낌이 들었다.

두근거림이 목울대를 타고 올라왔다.

그 사람은, 윤호 씨는 지금 어떤 얼굴로 기다리고 있을까.

편지를 열던 손길은 떠올라도,

그의 눈빛은 아득했다.



혼례상 앞, 하객들의 숨죽인 시선 속

나는 세 번째로 윤호 씨를 보았다.

첫 만남은 사진으로,

두 번째는 개울가에서,

그리고 오늘, 맞절 앞의 순간이었다.


내 앞에 선 윤호 씨는

붉은 곤룡포를 입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익숙하게 따뜻했다.


고개를 숙여 절을 하려는 찰나

나는 눈을 살짝 들었다.

그도 나를 보고 있었다.

아주 짧고 조용하게,

작은 웃음이 그 눈가에 번졌다.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편지 속 말들이 다 기억났고

그 사람의 떨리던 손이 다시 떠올랐다.

‘아, 이 사람이 내 사람이구나.’



밤이 되고, 방 안엔

등잔불만이 조용히 깜빡였다.


붉은 이불 위에 조심스럽게 앉은 우리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나는 손을 모아 무릎 위에 올려두었고,

그는 조용히 웃었다.


“오늘… 수고 많으셨지요.”

그의 첫마디는 낮게 떨렸고

나는 “예…”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동안… 참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나는 답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나올까 봐 말하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내 손등을 감싸 쥐었다.

예전에 개울가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하지만 이번엔 손끝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닿았다.


작은 촛불 아래

우리는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 밤의 고요는 두려움이 아닌,

서로의 숨결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한집 사람이 되었다’는 걸

마음 깊이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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