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기다림의 끝에서

윤호의 시점

제19화. 기다림의 끝에서

윤호의 시점


혼례 날짜가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속에 작은 종이 울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삼월 마지막 토요일.

꽃이 피기도 전, 내 마음이 먼저 피었다.


그날 이후, 하루하루가 달라졌다.

출근길도, 밥숟가락을 들 때도,

심지어 밤에 이불을 덮을 때도

그 사람 생각이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정숙 아가씨의 손을 처음 잡았던 날,

그 떨림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했다.


그 손은 얇고 작았지만

그 속에 담긴 조심스러움과 용기는

내가 지금까지 어떤 말로도 받아본 적 없는

진심이었다.


그 손을 잡고 돌아온 날 이후,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편지를 더 자주 쓰게 되었고,

밤이면 종이 위에 써 내려간 말들이

내 심장을 달래주는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혼례를 일주일쯤 앞두고

장인어른과 두 형님들이

이불과 살림살이를 지고 서울에 오셨다.


작은 창고방에 이불 세 채와 놋수저, 놋그릇들,

광목천에 싸인 솥단지며 반짇고리까지

하나하나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이 놓이는 걸 보며

나는 마음이 묘하게 따뜻해졌다.


어머님과 할머님도 분주히 움직이셨고

나는 장인어른께 서울 근처의 음식점으로

조심스레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식당 한편,

도자기 병에 담긴 청주를 따라내며

우리는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눴다.


형님들은

처음엔 말수가 적었지만

술 한 잔, 두 잔이 지나며

“정숙이 어릴 때”로 시작하는

작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말수가 없어도, 한 번 웃으면 아주 오래 웃던 애라니까요.”

“눈물도 많고, 속정도 깊은 아이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들고, 말을 아꼈다.


그 자리는 조심스럽지만 따뜻했다.

서로를 완전히 알지 못해도

정숙이란 사람을 사이에 두고

이미 우리는

‘가족’이 되어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장인어른은 마지막에 술잔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말씀하셨다.


“자네 얼굴을 보니,

이놈을 보내도 되겠구먼.”

그 말에

나는 괜히 목이 메었다.



그날 밤,

나는 방에 혼자 앉아

그날 들었던 말들을 하나하나 되새겼다.


이젠 정말

그 사람과 한집 살림을 시작하는 거구나.

손을 잡았던 그날의 심장 소리는

이제 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움은 이제 기다림을 지나,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었다.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날 이후

잠을 설쳐도, 마음은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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