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의 시점
제20화. 눈짓으로 전한 말
윤호의 시점
혼례날 새벽,
어둑한 서울역 플랫폼에는
입김마저 하얗게 올라왔다.
나는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와 함께
등에 함을 지고
정숙 아가씨의 집이 있는 시골 마을로 향했다.
함 속에는
붉은 비단 보자기에 싼 혼서지,
가락지, 한지 봉투 몇 개,
그리고 어머님이 손수 준비해 넣으신 약과며 엿이 들어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자,
작은아버지가 입김을 불며 말했다.
“긴장되나?”
나는 작게 웃었다.
“네… 그런데 설렙니다.”
서울의 골목을 빠져나와
들녘과 산마루가 보일 때쯤,
나는 이 긴 여정이 왜 이리 짧게 느껴지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도 그 사람을
오늘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 하나 때문이었다.
정숙의 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의 옷차림은 모두 새로웠고,
사립문 밖에는 이웃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드리고
사랑방에서 어른들께 절을 올린 뒤,
잠시 혼례 준비를 기다리는 사랑채에 앉았다.
가슴이 자꾸 요동쳤다.
그 사람은 지금 어떤 얼굴로, 어떤 마음으로
이 날을 맞고 있을까.
혼례상이 차려지고
붉은 비단을 앞에 둔 채
나는 맞은편에서 그녀를 세 번째로 마주했다.
처음은 사진 속,
두 번째는 개울가.
그리고 지금—
정숙 아가씨는 연지곤지를 찍은 단아한 얼굴로
나를 향해 조용히 절을 올리려 했다.
나는 그 순간,
절을 하기 직전 고개를 아주 살짝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긴장한 듯
가늘게 다문 입술,
살짝 떨리는 눈썹,
그러나 꼭 잡은 손은 단단했다.
나는 그 떨림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보일 듯 말 듯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눈으로, 마음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긴장하지 말아요.
보고 싶었습니다.”
정숙은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멈칫했지만
그 짧은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와 마음이 닿은 것 같았다.
맞절을 마치고
혼례식이 끝났을 무렵,
나는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이 사람과
이제 정말 한 집, 한 마음으로 살아가겠구나.
긴 여정 끝에
가장 소중한 시작점 앞에 선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