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대문 앞에서

38화. 도서관에서 조용히, 그러나 마음은

38화. 도서관에서 조용히, 그러나 마음은 시끄럽게

일요일 아침, 우리는 약속대로 도서관 앞에서 만났다.

하영이는 머리를 반묶음으로 묶고

약간의 색조 화장을 한 듯했다.

윤하도 평소보다 말끔한 옷차림으로 나타났고

나는 어젯밤 다림질해 놓은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오빠는 먼저 가 있어. 우리 자리 잡고 갈까?”

내 말에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도서관 문을 밀고 들어가니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형철 오빠는 창가 자리에 앉아

조용히 책을 넘기고 있었다.



---


우리는 그의 옆자리를 피해서

멀찍이 빈자리에 앉았다.

하영이도, 윤하도 그 방향으로 자꾸 고개를 돌렸다.


조용한 도서관이었지만

우리 셋의 마음은

자꾸만 소리 났다.



---


책장을 넘기면서도

나는 자꾸만 귀를 열었다.

하영이는 형광펜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는 척하면서도

자꾸 나를 건드렸다.


“선영아, 너네 오빠는 수학을 제일 잘해?”


“그런가 봐. 요즘엔 물리도 한다고 했어.”


“와… 멋있다.”


하영이의 눈빛은

진짜였다.



---


그런데, 윤하가 갑자기 말을 보탰다.


“근데 너네 오빠, 되게 성실한 스타일이다.

얼굴도 작고… 코도 오뚝하고.”


나는 웃으며 넘기려 했지만

윤하의 말투에서 무심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쩐지,

그녀도 오빠를

조금씩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얘들아, 잠깐 나가서 음료수 마실래?”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말했고

윤하가 먼저 일어났다.


“좋지! 나 목말랐어.”


우리는 도서관 뒤편 작은 정자에 앉았다.

자판기에서 뽑은 밀크커피 캔을 들고.



---


“선영아, 너 좋겠다. 오빠 멋있어서.”


하영이의 말에 윤하가 장난스럽게 맞장구쳤다.


“그러게. 나였으면 매일 자랑했을 듯.”


나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뭐가 멋있긴… 그냥 집에선 말도 없고 무뚝뚝해.”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내 안엔

괜히 가시처럼 걸리는 감정들이 있었다.


오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오빠를 다르게 보기 시작하니

내가 알던 오빠가

조금씩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


도서관으로 다시 들어가는 길,

나는 발걸음을 살짝 늦췄다.


하영과 윤하는 앞서 걷고 있었고

나는 천천히, 그들 뒤를 따라가며

작은 속삭임을 들었다.


“근데 진짜 잘생기긴 했어. 눈빛도 다르다니까?”


“맞아. 나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어.”



---


도서관 안은 조용했지만,

내 마음은 점점 시끄러워졌다.


공부도, 책도, 음악도

오늘은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빠를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를 보는 눈빛이

내게 왜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질까.


내가 놓치고 있는 감정의 이름이

질투인지, 서운함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를

나는 아직 정확히 몰랐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철대문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