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조금 다른 거리
제69화. 조금 다른 거리
일요일 아침, 하영이는 평소보다 일찍 준비를 마쳤다.
책가방이 무겁지도 않은데 어깨끈을 몇 번이나 고쳐 맸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정돈하던 손길도 조심스러웠다.
"선영아, 오늘 도서관 갈래? 현철 오빠랑 같이 가기로 했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응, 좋아. 나도 공부 좀 해야지."
사실 그날은 그냥 집에 있고 싶었다.
전날 밤늦게까지 책을 읽었고, 머리도 지끈거렸으니까.
하지만 무언가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영이와 현철 오빠 사이에 흐르는 공기,
그 틈 사이에 나도 끼어 있고 싶었다.
---
도서관은 조용했다.
창문 틈으로 부드러운 겨울 햇살이 들어와 책상 위를 물들였다.
세 사람은 나란히 앉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멀게 느껴졌다.
하영이와 오빠는 작은 소리로 책에 대해,
진로나 공부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앞면의 책장을 넘기며
뒤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교육학도 괜찮은 것 같아요.
연구도 재밌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의미 있잖아요."
하영이의 목소리는 설렘이 묻어 있었다.
"그렇지. 넌 말도 조리 있게 잘하니까.
사범대 쪽으로 가면 너한테 잘 맞을 거야."
현철 오빠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뭔가 말을 보태고 싶었지만
입술만 달싹이고 말았다.
나는 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까.
머릿속은 생각들로 복잡한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커피 한 잔 사러 간다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사실은 그 자리가,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혼자 걷는 골목길이 낯설었다.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땅을 보며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다가,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도 하영이처럼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나도 누군가와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 그만큼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하영이와 현철 오빠는 나보다 조금 앞서 있었다.
그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
그날 저녁, 하영이에게 쪽지가 책에 꽂아져. 있었다
> 선영아, 오늘 고마워.
같이 못 있어줘서 미안해. 다음엔 셋이 진짜 재미있게 놀자. 약속!
나는 그 쪽지를 읽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짧게 맘속으로 답장을 보냈다.
> 괜찮아. 나도 생각 정리 좀 하고 싶었어.
다음엔 같이 영화 보자 :)
---
조금 서운했지만,
그렇다고 하영이나 오빠가 싫어진 건 아니었다.
나는 나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조금 더딜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느린 걸음마저도
소중하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