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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골목

91화

91화. 엄마의 그늘

엄마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

우린 파란 지붕 집으로 이사 왔고,

남동생 둘은 아직 너무 어렸다.


그땐

살림도 일도 감정도

모든 게 벅차고, 낯설고,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던 시간이었다.


엄마는

어느 날 용기를 내어

할머니께 말했다고 한다.


“한 달만…

한 달만이라도

아이들 좀 함께 봐주시면 안 될까요?”


아마 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도

그분의 가정이 있고 삶이 있다는 걸.


하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시어머님이라는 존재가

그립고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바쁜 사이,

갓난아이들을 안고

끝없는 일 속에서

혼자 버티고 있던

어설픈 새댁이었을 엄마.


그 엄마는,

누군가 자신을

“괜찮아, 잘하고 있어”

토닥여주는

울타리 같은 사람이

시어머니였으면…

그렇게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는

대답을 하지 못하셨다.

어쩌면 미안함에,

어쩌면 상황에

말끝을 흐리셨을 것이다.


엄마는 그날,

무너지는 마음을

조용히 추스르며

다시 마당으로,

부엌으로 나아가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엄마는 더 강해졌고

더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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