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2화. 괴산의 여름, 흙먼지의 시간
나는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다.
1958년의 여름, 매미 소리가 담장을 넘고,
흙먼지 날리던 골목에 나는 갓난아기로 안겨 있었다.
우리 집은 마당이 있는 오래된 기와집이었다.
여름이면 낮은 처마 밑에 멍석을 깔고 형제들이 모여 앉아,
수박을 먹고, 콩깍지를 까고, 땀에 젖은 옷을 바람에 말렸다.
7남매가 오순도순 살았던 집.
누군가 울면 또 누군가는 금세 달래주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늘 조용한 아이였다.
들꽃을 오래 들여다보거나,
말없이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던 기억이 많다.
말을 꺼내기보다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 게 익숙했고,
그래서일까, 지금도 누군가의 말보다 눈빛을 더 오래 기억한다.
어머니는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 보리차를 끓이고,
아버지는 농사일로 구릿빛이 된 얼굴로
“점심이나 묵자” 하시며 돌아오셨다.
내 기억 속 여름의 냄새는 항상 보리 볶는 냄새와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던 연기 냄새였다.
우리 집에는 전기가 늦게 들어왔다.
해가 지면 호롱불 아래 모여 앉아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로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늘 용기 있는 아이가 있었고,
나는 그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 속 세상은 너무 멀어 보였다.
나는 말이 없는 아이였고,
세상 앞에 나서는 일엔 늘 망설임이 앞섰다.
여름은 언제나 길었다.
논두렁을 따라 메뚜기를 쫓고,
형들이 만든 나무칼을 손에 들고는
무턱대고 산까지 올라갔다가
혼이 나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혼쭐도 그 시절엔 어찌나 따뜻했던지.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 평범하고 고단한 하루들이
나중에 얼마나 눈부신 기억으로 남게 될지를.
괴산의 여름은 그렇게
흙먼지와 땀, 그리고 웃음으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