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하나로부터

5화

5화. 친척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서울로 올라갔다.

그때 난 열여덟 살이었고,

세상에 대해서 아는 건 별로 없었지만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는 말은

이미 마음 깊이 새겨져 있었다.


서울에서 내가 머물 곳은

어머니의 먼 사촌 언니 댁이었다.

세 식구가 살던 집에 내가 들어가

식구는 넷이 되었고,

방 하나 없는 작은 집에서

나는 거실 한쪽에 이불을 개어 뒀다가

밤마다 펴는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많이 고마웠다.

밥도 잘 챙겨주셨고,

비 오는 날엔 우산도 챙겨주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자꾸 눈치가 보였다.

내가 먹는 밥숟가락 소리,

씻고 나오는 욕실 타일 위 발자국,

그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설거지를 돕겠다고 나서면

“아냐, 넌 그냥 쉬어” 하셨지만

정말로 쉬어도 되는 건지 늘 고민이었다.

나를 아껴주셨지만,

그 안에는 ‘남의 집’이라는 이름표가 있었다.


한 번은 TV를 보며 웃었는데,

작은 한숨이 옆에서 들렸다.

그날 이후 난 웃는 것도 조심하게 되었다.

산다는 건, 아무리 잘해줘도

눈치는 보이는 법이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낮에는 을지로의 사무보조로 일했고,

저녁엔 학원에서 타자 연습을 했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살금살금 문을 열고 들어가

냉장고에서 물 한 컵을 꺼내 마셨다.

누군가 내 발소리를 들을까

조심조심 걷던 그 밤들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곳은 내 집이 아니었고,

나는 손님도 아니었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감사함과 미안함 사이’에 살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 시간은 분명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사람 마음의 틈을 느끼는 법,

아무 말 없이 주변을 돌보는 법,

그리고 남의 마음에 조심히 들어가는 법을

그 집에서 배웠다.


지금도 누군가 내게 묻는다.

“서울살이, 외롭지 않았어요?”

그러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네, 외로웠고 눈치도 봤지만…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누군가에게 조용히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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