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하나로 부터

8화

8화. 결혼, 그리고 첫 번째 겨울

결혼을 하고 그해 겨울,

나는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하얀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어느 아침,

세탁기 위에 조용히 올려둔 작은 테스트기 위로

선명한 두 줄이 나타났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쁘다기보다 놀랐고,

놀랍다기보다… 벅찼다.


남편은 내가 아무 말 없이

검은 봉투를 건네자

말없이 그것을 열어보았다.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그는 내 손을 조심스레 잡고

이렇게 말했다.

“잘해보자, 우리.”


결혼한 지 석 달이었고,

나는 아직도 남편의 말투에

익숙해지지 못했을 때였다.

그의 고백 같은 이 한마디에

나는 마음이 풀어져

그날 밤, 혼자 울었다.


그 겨울은 유난히 조용하고,

또 유난히 따뜻했다.

나는 입덧이 심하지 않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마음이 자주 멍하곤 했다.


‘내 안에 또 다른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조금은 두려웠다.

하루는 책상 앞에 앉아

가만히 배를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이 작은 생명은

나를 얼마나 닮을까.

그리고 나는…

어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남편은 주말마다 시장에 나가

과일이며 고기며 이것저것 사 왔다.

그리고 식탁에 조심조심 올려놓으며

나보다도 배 속 아기를 먼저 생각했다.

그런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고,

또 어딘가… 울컥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나는 자주 옛 생각이 났다.

보리차를 끓이던 엄마,

밥그릇에 차를 마시던 아버지,

그때의 우리 가족처럼

나도 이제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집’을

차곡차곡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가 저물 무렵,

나는 부쩍 조용해졌다.

기대와 두려움, 설렘과 책임이

마음속에서 엉켜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그 작은 존재 하나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어른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겨울의 따뜻한 기억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내가 엄마가 되기로 처음 결심한 계절,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커다란 기적이

내 안에 머물던 시간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찻잔 하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