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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쉰을 넘기고, 처음 내 이름으로 숨 쉬기 시작했다
쉰을 넘기고 나서야
하루가 조금 느리게 흘렀다.
어딘가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이제야 조금씩 찾아왔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고,
집 안은 조용해졌다.
처음엔 그 조용함이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고요함이… 참 좋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불리던
“엄마”라는 이름 대신,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이제, 나”라고 부를 수 있게 된 시간.
큰아이가 결혼을 하고 떠난 어느 날,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찻잔 세트를 선물로 줬다.
흰색 바탕에 연보라색 꽃이 그려진
자그마한 도자기 찻잔.
처음엔 어색했다.
“이런 거, 내가 쓰는 게 맞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느 조용한 오후,
주전자에 물을 올려 녹차를 우리고
그 찻잔에 따뜻한 차를 부었다.
따뜻한 잔을 두 손으로 감쌌을 때
처음으로 내 하루가
‘나를 위한 시간’이 되었음을 알았다.
그동안 나는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직원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 모든 이름 위에
‘나’라는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창밖으로 햇살이 비치고,
찻잔에 잔잔한 김이 올라오는 그 순간이
왜 그토록 고맙고도 벅찼는지
아직도 잘 설명은 못하겠다.
다만,
나는 이제야 비로소
살아 있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조용하고 따뜻하고,
조금은 허전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
쉰을 넘긴 나의 일상은
예전보다 특별하지 않아도
이제는 충분히 의미 있다.
이 시간 속에서,
나는 내 이름으로
차를 마시고, 숨을 쉬고,
글을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