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농사, 나를 일구다》

6화

《첫 농사, 나를 일구다》

6화. 7월, 첫 열매가 열린 날

7월.
장맛비가 스쳐간 날들이 지나고 나니
밭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수박 넝쿨은 밭을 누비고 있었고,
고구마 잎은 초록의 카펫처럼 뻗어 나갔다.
호박은 벌써 큰 잎을 머리 위로 치켜세우고,
이제 자기가 이 땅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밭에 들어서는 순간마다
심장이 뛴다.
처음 심을 땐 그렇게 초라하고 약해 보이던 것들이
이젠 나보다도 기세등등하다.

비가 잦아 흙은 진창이 되기 일쑤였지만,
비 온 뒤 흙냄새 속에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대와 불안을 오갔다.

“과연 열매가 맺힐까.”
“이게 정말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이 될까.”

매일 수박 넝쿨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잎을 들춰보며 노랗게 핀 꽃을 살펴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
수박꽃 아래에 작은 구슬만 한 열매가 맺혀 있는 걸 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 조그만 열매 하나가
내 땀과 걱정, 실수와 배움,
그리고 이 밭에 바친 내 여름의 전부라는 걸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나는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에게 이 기쁜 순간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밭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말했다.

“고맙다.”

작은 수박 하나에 그렇게 감동할 줄은 몰랐다.
내 손으로 열매를 맺어본 적이 없던 인생이었다.
늘 누군가가 해놓은 걸 소비만 하던 삶.
그게 편하다고 믿었고,
이렇게 힘든 길은 누가 하겠냐며 눈길도 주지 않았던 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이 작은 수박 하나가
나를 얼마나 바꿔놓았는지 모르겠다.

옥수수는 줄기를 곧게 세우고,
수염을 뽑듯 긴 수술이 삐죽삐죽 나왔다.
호박은 어느새 조그마한 동그라미를 달았고,
고구마 넝쿨은 밭 밖으로 도망갈 듯이 뻗어갔다.

그 무렵엔 벌레도 많아졌다.
진딧물, 노린재, 담배거세미나방…
처음엔 겁이 났다.
하지만 매일 밭에 나가 눈을 들이대고, 잎을 만지고,
벌레들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적정한 방제법을 찾아 농약대신 친환경 유황제를 써보기 시작했다.
죽은 게 아니라 살리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싶었다.

햇볕은 거칠었고,
땀은 눈가로 줄줄 흘렀고,
손등은 어느새 새까맣게 타버렸다.
그러나 그런 내 모습이
스스로 대견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쓸모없다고 느낄 때도 많았고,
나이 들어 이제 뭘 시작하기엔 늦지 않았나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밭에서의 한 달은
그 모든 생각을 깨뜨려주었다.

땅은 내가 준 만큼을
어떤 식으로든 돌려주었다.
그게 싹이든, 꽃이든, 아니면 하나의 열매든.

그리고
그 여름이 한창 깊어가던 어느 날,
수박 넝쿨 아래
주먹만 한 수박 하나가 단단하게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아
땀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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