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나는 남고 그는 떠났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14화. 그 겨울, 나는 남고 그는 떠났다

겨울방학.
교정엔 눈이 소복이 쌓이고
강의실엔 불이 꺼졌다.

학생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그 겨울,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도서관 대신
나는 집과 학원, 회사를 오갔다.
언제나처럼 빽빽한 시간표,
아르바이트와 강의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었지만
왠지 그해 겨울은 유난히 조용하고 허전했다.

왜일까.
그 사람,
선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외 봉사 다녀올게.”
겨울방학을 앞두고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선배는 웃고 있었다.
평소처럼 담담하게,
마치 멀지 않은 곳에 다녀올 거란 듯.

나는 그 말에
그저 “그래, 잘 다녀와요.” 하고 웃었다.
진심이 담긴 웃음은 아니었지만,
나도 그 순간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

정확히 어느 나라였는지도
며칠을 가는 건지도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선배는
겨울이 시작되기 직전,
말 그대로 훌쩍 떠나버렸다.

처음 며칠은
오히려 덤덤했다.
도서관도 가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잠시 동안은 그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문득,
하루의 끝에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때야 깨달았다.
나는 선배가 없는 계절을 처음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단순한 선배가 아니었다.

조용히 음료를 건네주던 사람.
내가 기침을 하면 약봉투를 들고 찾아오던 사람.
밤늦게 전화해서 오늘 하루 어땠냐고,
내 목소리에 기분을 읽어주던 사람.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진 겨울이었다.

대신 남은 건
'괜찮은 척'하는 나뿐이었다.

사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 안 하려고 애썼다.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을까”
그런 상상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선배는 분명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그 멀고 추운 곳으로 떠난 거겠지.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비우는 중이었다.

도서관이 아니니까,
더는 선배의 빈자리와 마주칠 일도 없었다.
그게 조금은 다행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내 눈에 밟히는 건
눈 덮인 캠퍼스도,
책상 위 자격증 교재도 아닌,

**그 사람이 내 곁에 있었던 '아무렇지 않던 날들'**이었다.

‘그날 내가 진심을 말했더라면,
이렇게 흘러갔을까?’

계속 피했던 질문이
혼자 있는 밤이면 조용히 밀려왔다.

나는 아직,
사랑이 끝났다는 것도
사랑이 시작됐었다는 것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겨울,
나는 처음으로
그 사람이 없는 시간을 살아내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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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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