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 일기

7화 서울, 다시 현실을 껴안다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마루 끝 일기 7화

서울, 다시 현실을 껴안다

2025년 7월 31일

제주에서 돌아온 날은
항상 ‘온몸의 체온을 식히는 날’이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폭포 아래서 발을 담그고 있었는데,
오늘은 다시 이 도심의 옥상에 올라
말라붙은 화분들을 살펴본다.

단 3일 비웠을 뿐인데
잎은 타들어 가고,
화분 흙은 쩍쩍 갈라져 있었다.
도심의 여름은
제주의 바람보다 몇 배는 더 뜨겁고 거칠었다.

물을 한가득 주고 나서야
식물들이 겨우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이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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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활짝 열고
그 사이 쌓인 먼지며
빨래, 분리수거, 청소까지
혼자서 후다닥 해낸다.

남자들만 있는 집에
엄마 한 명 없었을 뿐인데
집은 이내 엉켜 있었고,
그걸 풀어내는 건 결국 나의 손이었다.

이제는 익숙한 일이다.
한편으론 고요해서 좋기도 하다.
누구의 간섭도 없는 시간.
30년이 다 된 에어컨은 시원한 척을 하지 않아
결국 얼린 생수통을 껴안고
선풍기 앞에서 혼자만의 여름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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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막내는
아침 일찍 스튜디오로 출근했다.

형이랑 사진 실력만 믿고
겁도 없이 창업을 했던 아이.
나는 그저 멀찍이서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오늘은
대학생 단체 졸업작품을
찍는다고 했다.
운영비와 월세라도 겨우 맞춰보려는
조급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 마음을 알기에
속으로는 백 번쯤 쫓아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내가 끼어들면 아이의 걸음을 방해할 수도 있겠지.

그래, 어쩌겠는가.
벌써 성인의 문턱에 선 아이인데.


---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다.
모든 게 서툴고
모든 게 두려우면서도
끝없이 앞으로만 가고 싶던 나날들.

지금은 그 시절의 내 아이가
또다시 내 앞에서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 한마디로
내 마음을 묶어본다.

넘어지지 않기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힘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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