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 일기

9화 서울의 아침, 괴산의 수박밭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마루 끝 일기 9화

서울의 아침, 괴산의 수박밭

2025년 8월 1일

새벽부터 분주했다.
아침을 꼭 먹고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밥을 짓고, 반찬을 데우고, 간식도 챙긴다.
막내도 일찍 나가야 한다고 했다.
7시까지 스튜디오에 도착해야 한다며
졸린 눈을 비비고 가방을 둘러메고 나섰다.

어제 그 지하 스튜디오에서
하루 종일 졸업작품 촬영을 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서
스탠드 에어컨을 최저로 틀어도
촬영 내내 더워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오늘도 이어지는 2차 촬영.
미용 스텝만 7명, 진행진 7명,
디자이너들과 모델들까지 포함해
하루 종일 북적일 스튜디오.

막내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엄마, 집에 있는 선풍기 가져가도 돼요?"

안 된다 할 수는 없지.
나도 잘 안다. 그 공간이 얼마나 더운지.
집에 있던 선풍기 세 대를 차에 실어
막내의 스튜디오로 내려주었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은
서울과 아들의 뒷모습에서 시작되었다.


---

곧바로 괴산으로 향했다.
일주일 만에 찾은 수박밭.
그 사이 날은 더 뜨거워졌고
밭의 수박 잎들은 시들시들
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해, 많이 목말랐지..."

수도를 틀어 물을 보내고
긴 호스를 끌어 밭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멀리까지 쏟아지는 물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땅마다, 작물마다
골고루 수분이 퍼지도록
호스를 끌고 옮기며 물을 뿌렸다.

점점 더위가 온몸으로 올라오고
땀은 옷을 적시고 있었다.
임시로 쳐놓은 그늘막 안
작은 간이의자에 앉았다.
아이스박스 가득 담아 온 얼음물은
벌써 반쯤 녹아 있었다.


---

수박 한 덩이를 깨끗이 씻어 반을 갈랐다.
칼끝이 지나간 자리에 드러난
빨간 속살.
그동안의 고생과
이 더위 속에서도 살아남은
수박의 고마움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바로 따서 차갑진 않았지만
싱싱하고 달았다.
몸과 마음 모두에게
작은 위로 같은 한 조각이었다.

간이 의자에 앉아
멍하니 아랫마을을 바라봤다.
바람은 없었지만,
잠깐의 정적이 내 마음을 적셨다.

순간,
이 작은 언덕 위에서 바라본 풍경이
마치 천하를 손에 쥔 듯한
평온함을 주었다.


---

> 계속되는 여름 속에서도
삶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어요.
엄마로서, 아내로서, 또 나 자신으로서
하나씩 짊어지고 웃어보는 하루들.
마루 끝에서 또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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