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흔적

마루 끝 단편 추리 3화 — 낯선 흔적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 낯선 흔적

밭에 도착한 건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차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공기가 훅 들어왔다. 며칠 전 내린 비 덕에 흙냄새가 더 짙었다.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얼음물 한 병을 들고, 나는 구석에 덮어둔 물 호스를 풀기 시작했다.

수박이 있는 두둑은 멀쩡해 보였지만 뭔가 이상했다.
늘 첫눈에 반가운 그 붉은 줄무늬 수박들이 오늘은 어딘가 시선을 피하고 있는 듯했다.
호박잎을 들어가며 수박을 확인하는데, 오른쪽 모퉁이에 두었던 수박 하나가 반쯤 잘려 있었다.
누가 깎다 만 것처럼, 깔끔하게 베인 자국.
그 순간, 머리가 띵했다. 내가 이걸 베지도 않았고, 벌레가 할 수 있는 짓도 아니었다.

"누가 밭에 들어왔나?"

생각보다 무서운 건 그 흔적이 어설프게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잘린 수박 위에는 호박잎 두 장이 얹혀 있었고,
그 옆에는 마치 ‘이건 그냥 부패한 수박이에요’라고 말하듯 말라붙은 줄기 하나가 덮여 있었다.

고춧대를 꺼내 수박 자리에 꽂아두고, 나는 주변을 살폈다.
잡초를 뽑기 위해 구부렸던 허리가 곧게 펴졌다.
밭 가장자리, 담벼락 근처엔 익숙하지 않은 발자국이 있었다.
운동화 자국, 내가 신는 장화보다 작고 날렵한 굽.
흙이 눅눅했던 지난 비 오는 날 이후로 생긴 흔적일 거다.
그럼 그날 밤 누군가 여기에 들어왔다는 얘기다.

손에 쥔 고춧대를 천천히 내려놓고, 나는 밭 전체를 한 바퀴 돌았다.
그늘막 밑의 의자는 어제 그대로인데, 작은 방석이 방향을 다르게 틀고 있었다.
누군가 앉았던 모양이다.
남편도, 아이들도 밭엔 들어오지 않는다.
이 밭은 오롯이 나 혼자만 드나든다.

나는 아이스박스에서 수박 한 통을 꺼내 썰며 심호흡을 했다.
이게 동네 장난일 수도 있다. 길 잃은 아이가 놀다가 잘못 들어왔을 수도 있고.
하지만 마음은 그 단순한 이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너무 조용하고, 너무 치밀했으니까.

그날 저녁, 동네 단체 톡방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 “혹시 괴산 3 구역 밭 근처에서 흰 셔츠 입은 사람 본 분 있나요?
저희 밭 비닐하우스 문이 열려 있었어요.
안에 있던 모종박스도 엉망이 되었고요…”



누군가는 그 글에 장난 아니냐고 웃었고, 또 누군가는 **“CCTV라도 달아야 하는 거 아냐”**며 반응했다.
나도 모르게 창밖을 봤다.
비에 젖은 도로가 반들반들했다.
그 빗길을 따라, 그 사람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그날 밤, 나는 문을 두 번 잠그고 잤다.
그리고 내일은 밭에 오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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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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