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검은 필름 속 얼굴

마루 끝 단편추리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장르: 단편 추리 / 미스터리

---
“이 사진, 당신들이 찍은 거죠?”

낯선 남자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치 무언가 확신이라도 한 듯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날…
이 수박 두 통 옆에,
누가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의 손에는 작은 노트가 들려 있었다.
노트 속에는 날짜와 시간, 장소,
그리고 이름 모를 기호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한눈에 봐도 누군가를 추적한 기록이었다.

“그 사진은 이틀 전, 새벽 3시 15분.
주차장 새시문 앞에서 찍힌 겁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우리 주차장을 천천히 살폈다.

“제가 찾는 사람도 그곳에 있었어요.
검은 모자에 선글라스,
그리고… 이 귀걸이.”

그가 꺼낸 귀걸이는
며칠 전 우리가 받은 그것과 똑같았다.

“같은 사람이네요.”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죠. 그녀는… 제 여동생입니다.”


이 남자,
처음부터 우리에게 진실을 묻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 스튜디오에 그녀가 다녀간 것을.
우리가 그 상자와 영상을 봤다는 것도.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 보셨죠?”

“…네. 보았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펼쳤다.
종이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 “카메라를 치워.
누가 보고 있어.”



그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내게 건넸다.

“그날 이후, 그녀는 사라졌어요.”


남자는 필름을 맡겼던 현상소에서
무언가를 건네받았다며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당신들이 찾아야 할 겁니다.
그녀가 일부러 여기로 향한 이유…
그 안에 있을지 몰라요.”

나는 조심스레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엔 흑백 필름 사진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처음 두 장은
스튜디오 내부.
한 명의 여성이 촬영용 조명을 바라보며 서 있었고,
다른 한 장은
누군가를 등진 채 뒷모습만 찍혀 있었다.

세 번째 사진을 본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사진 속 그 여자,
그녀의 얼굴을 내가 알고 있었다.


그녀는…
2층 주인 언니와 함께
예전에 동네 커뮤니티 행사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던 그 디자이너였다.

언제나 말이 없고,
혼자 있는 걸 좋아했고,
카메라를 잘 다루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연락이 끊겼었다.

“혹시… 이 여자를 기억하세요?”

남자가 묻자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녀는, 사라진 게 아니었네요.
이 동네로… 돌아온 거군요.”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제 여동생이 이 동네로 들어온 건,
그 디자이너를 추적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녀는 그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왜죠?”

그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 디자이너가 과거에 찍은 사진들 속엔
누군가의 사생활을 넘는 어두운 비밀이 담겨 있었대요.”

“… 그게 무슨 의미죠?”

“그녀가 말하길…
사진 속엔 단지 인물이 아니라
사라진 사람들,
혹은 잊힌 진실들이 있다고 했어요.”


그 순간, 나는 스튜디오 사물함 안에
한 장의 인화되지 않은 필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기억했다.

그건 그 여자가 두고 간 마지막 필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녀의 마지막 기록.

“이걸 현상하면…”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이 드러날 수도 있고,
또는… 당신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어요.”


그날 밤,
나는 혼자 스튜디오에 남았다.

카메라, 필름, 노트, 귀걸이, 사진들…
모든 조각들이
이상하게도 맞물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수박 두 통이 찍힌 그 사진.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그 장면 속,
창고 안 그림자에 분명 누군가가 서 있었다.

나는 사진을 확대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그림자 속 사람은… 나였다.

그 시간,
나는 주차장에 있었던 게 아니었다.
분명히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그렇다면…
누가 내 모습을 사진 속에 만든 것일까?


영상, 사진, 귀걸이,
그리고 사라진 여자.

그녀는 정말 사라진 걸까?
아니면… 우리 중 누군가의 시선에서만
사라진 걸까?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익명 발신.
메시지 한 통.

> “사진 속 당신.
그날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죠?”




나는 숨을 삼켰다.
누가, 우리의 기억을 조작하고 있는 걸까.
혹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 무언가를 본 걸까.

그리고 깨달았다.

이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안 된 걸지도 모른다.


---

#마루끝단 편 추리 #10화 #기억의 사진 #흑백필름 #사라진 디자이너 #스튜디오비밀 #숨겨진 기억 #단편서스펜스 #주차장단서 #귀걸이단서 #의문의 남자 #브런치연재


---

다음 화에서는
사진 속 그림자의 진실,
사라진 디자이너와 여동생의 마지막 기록,
그리고 주인 언니의 수상한 침묵 속에 감춰진
또 다른 반전이 이어집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기억을 뀌메는 사람···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17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8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0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0화제10화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