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 일기》
에어컨 바꾸는 날
여름 한복판, 8월 4일 월요일.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였다.
누군가가 오늘 하루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아마 “이 사람은 오늘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내게 일어난 가장 ‘큰일’은 바로 에어컨을 교체하는 일이었다.
말만 들어도 별일 아닌 것처럼 들리겠지만, 내겐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작은 전쟁과도 같은 일이었다.
요즘처럼 전기요금이 무섭게 치솟는 여름에, 낡은 에어컨 하나는 정말 부담이다.
정부에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여름철 전기요금에 대해 어느 정도 할인 혜택을 줬었다.
그래서 비싸긴 해도 “그래, 여름 한철만 잘 버티자” 하고 넘어가곤 했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없어졌다는 뉴스를 들었다.
믿기지 않아도 사실인지 확인할 틈도 없이, 전기검침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달 전기 사용량이 갑자기 많아졌네요, 혹시 에어컨 많이 틀으셨나요?”
그 한 마디에 숨이 턱 막혔다.
‘아, 진짜 전기요금 폭탄 맞겠구나.’
작년만 해도 4층은 15만 원, 5층은 18만 원이 나왔다.
그게 무서워서 웬만하면 에어컨도 오전에는 안 틀었고, 선풍기와 부채로 버텨왔는데…
올해는 할인도 없다니.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중고마켓 당근을 뒤지기 시작했다.
운 좋으면 거의 새것 같은 에어컨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걸 못마땅해했다.
“요즘 같은 때에 누가 중고를 믿냐고. 새 걸로 시원하게 바꾸고 말지, 고생 그만해.”
말은 맞는 말인데, 잔소리는 폭탄처럼 들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며칠을 그냥 넘겼다.
결국 남편에게 모든 걸 맡기고, 며칠이 지나 에어컨 설치 기사님이 오신다는 전화를 받았다.
오늘 아침, 그것도 9시 반에.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젯밤에 늦게 도착했다는 것.
피곤에 절어있던 나는, 아침에 몸을 일으키며 잠시 멍해졌다.
‘이거 정말 해야 하나? 다음에 하면 안 될까?’
하지만 기사님은 정확하게 연락을 주셨고, 나는 본능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오랜만에 새벽 5시 전에 눈을 떴다.
에어컨이 설치될 공간을 비우고, 정리하고, 청소했다.
4층, 5층 두 군데나 되니 정말 전쟁이었다.
옥상 위 실외기가 놓일 자리도 말끔히 정리했다.
남편 없이 혼자 처리해야 하니까 기사님들께 미안하지 않게끔 동선까지 미리 점검했다.
이 모든 일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해가 중천.
아직 오전인데, 벌써 하루가 다 간 기분이다.
아침도 겨우겨우 준비했고, 커피 한 잔도 못 마신 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왜 이렇게 정신없는 날이 계속될까.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다들 이런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누구는 여름휴가를 준비하고, 누구는 가족과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그 사이에서 나는 전기요금과 중고에어컨, 남편의 잔소리와 기사님들 스케줄 사이에서 숨을 헐떡인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날이, 언젠가는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다.
지금 이 순간, 거실에 설치된 새 에어컨이 처음으로 작동되며 뿜어내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나는 조금은 웃을 수 있었다.
그래, 오늘도 잘 버텼다.
그래서 또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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