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미선 언니, 서울로 가다"
"미선 언니, 서울로 가다"
언니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
식탁 위 밥숟가락이 멈췄다.
아빠는 헛기침을 하셨고, 엄마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우리 집에서 ‘서울’이라는 말은 너무도 낯설고, 너무도 멀었다.
그 언니가 미선 언니였다.
우리 집의 맏이이자, 가장 믿음직한 딸.
엄마의 일손을 가장 많이 거들던 언니.
학교를 다녀오면 조용히 방 안에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고,
엄마가 어디를 가자 하면 말없이 따라나서던 그런 언니였다.
그랬던 언니가 처음으로 "나"를 말했다.
“서울에서 일하고 싶어.”
아빠는 언니를 곁에 두고 싶어 하셨다.
엄마는 한참을 말이 없으셨다.
하지만 언니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몇몇 기업에 원서를 넣었고,
마침내 이름만 들어도 아는 큰 회사 경리부 막내로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언니는 서울 다섯째 이모네에서 지내기로 했다.
한집에 모여 사는 사촌들 틈에서도, 언니는 단단히 제 자리를 만들어갔다.
틈틈이 편지를 써 보냈고, 그 편지엔 언제나 단정한 글씨와 함께 “잘 지내요”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엄마는 그 편지를 읽고 한참 말이 없으셨고,
나는 그 글씨를 천천히 따라 써보며 언니를 떠올렸다.
언니가 서울로 떠난 그해 겨울,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눈은 유난히 많이 내렸고, 아빠는 두꺼운 전집 책을 한 질 사 오셨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책도 많았지만, 나는 기어이 앉아서 한 권씩 넘겨봤다.
겨울방학 동안, 나는 엄마와 함께 찹쌀떡을 만들고 강정을 튀기며 보냈다.
막내 동생은 아직 기저귀를 찼고, 나는 업고 다니며 자장가를 불러줬다.
부엌에선 군고구마 냄새가 나고, 안방에선 아랫목이 따뜻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느꼈다.
‘뭔가가, 비어 있다.’
언니가 떠난 자리엔 조용한 바람이 남아 있었다.
그때 처음, 나는 알게 됐다.
누군가 집을 떠난다는 건, 그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남겨진 사람들도 조금씩 자라난다는 걸.
언니는 서울 하늘 아래에서,
나는 시골 겨울 아래에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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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날갯짓이,
남겨진 사람의 마음에도 바람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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