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세상과 나 사이

관찰자’가 되어버린 나의 자리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관찰자’가 되어버린 나의 자리

1981년 봄.
내가 국민학교 6학년이던 해, 시골학교의 운동장에도 진달래가 피어나던 그 해 봄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때 나는 '현철이'라는 아이가 참 어려웠다.
그 애는 나보다 한 살 위였고, 5학년이 되던 해터 그 아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같은 해 우리 학교에 새로 부임하신 김선영 선생님 반이 된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현철이가 선생님을 향해 보이는 유난스러운 애착,
어쩌면 그건 너무 선명해서 애써 외면해야 할 정도였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우리 반 아이들은 그 마음을 건드리지 않으려 애썼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 빈자리를 선생님의 다정함으로 꿰매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어른이 아닌, 같은 아이로서 우리는 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선생님 곁에 붙어 앉으려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며
모른 척, 못 본 척해주는 것이 아이들 나름의 배려였다.

현철이는 그런 아이였다.
어른처럼 행동하려 애썼다.
놀라울 정도로 야무졌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하던 모습은 마치 선생님 같기도 했다.
하지만 눈빛엔 늘 그늘이 있었다.
마치 “난 어른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다소 굳은 표정.
그런데도 그는 천진한 개구쟁이였다.
두 얼굴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
놀랍게도 공부도 잘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언제나 자연스럽게 반장을 맡았고, 누구도 이견을 내지 않았다.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나는 현철이를 통해 처음 배운 것 같다.

어느새 나는, 현철이의 관찰자가 되어 있었다.
수업 내용보다도, 그 아이가 어떻게 움직이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선생님을 돕는지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애가 쉬는 시간에 누구와 어울리는지, 점심시간엔 어떤 순서로 밥을 먹고 운동장에 나가는지를 눈으로 좇았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아이라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다.
멀찍이 앉은자리에서, 나는 현철이와 같은 무리에 낄 수 없었다.
그 아이는 결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렸고, 나는 내 자리에서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교실에서 현철이는 때론 선생님을 대신해 우리에게 학업 태도를 강요했고,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도 단호하게 우리를 제압했다.
쉬는 시간에 여학생들이 깔깔 웃기 시작하면,
조금 뒤엔 어김없이 현철이의 차가운 눈빛이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그 눈빛 하나에 분위기는 금세 조용해졌다.
선생님의 손발이 되어 교실을 조용히 만들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을 향해 무언의 압박을 주는 모습.
그건 분명히 우리 반의 ‘또 다른 선생님’ 같았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되면 또 달라졌다.
현철이는 남자아이들과 후딱 밥을 먹어치우고,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그렇게 운동장에서는 누구보다 평범한 소년이 되었다.
나는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낯설면서도 부러웠다.
그 아이가 너무 어른스럽다가도, 또래처럼 뛰노는 모습은
내가 잘 모르는 누군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진짜,
현철이는 알다가도 모를 아이였다.
가깝고도 먼 사람.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고 싶은, 그런 아이.

그 봄날 이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아이의 눈빛을 기억한다.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들이 얹혀 있던 그 표정,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내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들어와 앉은,
현철이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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