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세상과 나 사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슬픔

43화. 세상과 나 사이

소제목: 말하지 않아도 아는 슬픔
필명: 기억을 꿰매는 사람 황미순

어느 늦가을이었다.
학교 운동장 끝 은행잎이 바람에 따라 춤을 추던 날.
현철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처음엔 단순한 결석인 줄 알았다.
감기에 걸렸나, 일이 있었나.
하지만 이틀, 사흘이 지나고도
그 자리에 그 아이가 없자,
교실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현철이 아버지가 농약 드시고 돌아가셨대."

말인지, 바람인지 모를 소리들이
복도와 교실을 떠돌았다.
누구도 진심으로 묻지도 않았고,
선생님도 조용히 넘어갔다.

지금도 그 소문이
진짜였는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확인할 용기도,
그걸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던 것 같다.

며칠 뒤,
현철이는 다시 교실에 나타났다.
하지만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얼굴이었다.

말수가 줄었고,
눈은 늘 아래를 향해 있었으며,
웃음기가 사라진 자리엔
어른스러운 침묵이 들어찼다.

그날 이후 현철이는
선생님 옆에 더 자주 있었다.
우리는,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 애도,
그렇게 스스로 거리를 만들었다.
우리 사이엔 작은 틈이 있었고
그 틈은 조금씩, 조금씩 벌어졌다.

어쩌면 그건
서로를 보호하려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도
학교는 여전히 돌아갔고,
놀이는 계속됐고,
계절은 바뀌었다.

그리고 세월도,
아무렇지 않게 흘러갔다.

지금 나는
어른이 된 현철이와 가끔 연락을 한다.
특별히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의 소식은 알고 지낸다.

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 아이는 두 번이나
아무 말 없이 장례식장에 왔다.

묻지 않고,
말하지 않고,
그저 자리에 와서
오래도록 앉아 있었던 사람.
그게 현철이였다.

그 애도, 나도
어린 시절을 꼭꼭 기억하는 사람이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때의 슬픔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아마 그것이
우리에게 남은 가장 조용한 예의일 것이다.

그래서,
그 늦가을의 정확한 진실은
지금도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의 침묵이
그 어떤 말보다 컸다는 건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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