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세상과 나 사이

말없이 지켜주는 방식

42화. 세상과 나 사이

소제목: 말없이 지켜주는 방식
필명: 기억을 꿰매는 사람 황미순

사춘기가 시작된 그 시절,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리를 나눴다.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굳이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갈라졌고,
서로의 테두리를 넘지 않는 게
어색하지 않던 때였다.

사실,
놀이가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다방구와 말뚝박기…
해가 저물도록 놀고 또 놀았다.
웃음이 터지고, 다리가 아프고, 숨이 가쁠 만큼.
그 시절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가끔,
몇몇 개구쟁이 남학생들이
장난을 빙자해 우리 주변을 맴돌곤 했다.
어깨를 툭 치고 달아나거나,
가방을 몰래 숨기거나,
공기놀이판을 발로 툭 건드리고 웃고 도망가기도 했다.

나는 그런 장난이 싫었다.
겁도 났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말도 잘 못하고, 얼굴만 붉혀선
결국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곤 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어느샌가 현철이가 나타났다.

“야, 운동장으로 나와.”
딱 한마디.

장난을 치던 아이들을
조용히 불러 모아 운동장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축구공을 발로 툭 굴렸다.

말없이 시작되는 축구.
금세 아이들은 공을 쫓으며 땀을 흘렸고,
장난기 섞인 웃음은 어느새 운동장 먼지에 파묻혔다.

현철이는 누구를 혼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없던 우리 모두는
그 상황의 의미를 알았다.

그것은,
누군가를 조용히 감싸주는 방식이었고
또 다른 언어 없는 경고였다.

나는 직접 그에게 고맙다고 말한 적 없다.
그는 그런 말을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들 속에서
나는 자주 현철이라는 사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애는 늘 앞에 있었고,
필요한 순간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문제를 정리하고 돌아섰다.

그 모습은 ‘무서운 리더’가 아닌
조용히 흐름을 바꾸는
‘이상한 어른’ 같았다.

그날 운동장에 끌려나간 아이들이
다시 나를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어떤 사람은,
말보다 더 깊은 방식으로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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