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창고 비밀번호 0000의 비밀
– 창고 비밀번호 0000의 비밀
우리 마당에는 호수가 없다.
그냥 ‘저기서 첫 번째 집’은 101호, ‘그 옆’은 102호, ‘마당 제일 안쪽’이 나, 103호다. 그리고 제일 끝 구석에 있는 현관문은 세입자 집이 아니다. 거긴 집주인아저씨가 가끔 들락날락하는 곳이다.
이 구석집이 제일 신비로운 이유는, 가끔 문이 반쯤 열려서 안을 보면 자전거, 페인트통, 그리고 정체 모를 스티로폼 상자가 쌓여있기 때문이다.
마당 한편에는 ‘창고’가 있다.
비밀번호는… 0000.
이걸 보고 나는 집주인아저씨가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주인아저씨가 내게 진지하게 말했다.
“미순 씨, 창고 비번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아니, 이 동네 초등학생도 풀 수 있겠는데요?’라는 말이 맴돌았다.
창고 안에는 각종 농기구와 공구가 있다. 집주인이 마당에 있는 오래된 집들을 조금씩 수리할 때 쓰는 물건들이다. 그런데 집주인이 안 쓸 때는 빈 공간을 세입자들이 써도 된다.
그래서 우리 세 가구는 암묵적으로 ‘창고 공유 동맹’을 맺었다.
101호는 캠핑 의자, 102호는 전기릴선, 나는 자전거를 넣었다.
문제는… 누가 창고를 쓸 때마다 정체 모를 물건들이 사라지거나 위치가 바뀐다는 거다.
내 자전거가 어느 날은 벽에 세워져 있었는데, 다음 날은 창고 한가운데에 누워 있었다. 마치 누군가 타고 와서 쓰러뜨린 듯한 자세였다.
101호 아주머니는 “창고 귀신이 있는 거 아니냐”라고 했다.
102호 아저씨는 “그거 나예요. 자전거 타봤는데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요”라고 했다.
창고 비밀번호 0000은 참으로 위험하다. 동네 고양이조차도 발로 누르다 보면 열릴 것 같다. 그리고 창고 안은 세입자들의 ‘마당 마트’ 역할을 한다.
“저기, 망치 좀 쓸게요!”
“저는 삽 좀!”
이렇게 서로 부탁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창고 문이 덜컥 열린다.
이 집의 또 다른 개성은 난방 방식이다.
101호, 102호는 도시가스인데, 103호만 기름보일러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 집주인이 말했다.
“기름보일러라서 따뜻해요.”
근데 내가 느낀 건 ‘따뜻하다’보다 ‘비싸다’였다. 기름값이 요즘 얼마나 하는지 아는가? 보일러 한 번 돌리면 지갑이 눈물 난다.
겨울이 되면, 101호와 102호는 서로 가스비 비교하며 자랑한다.
“이번 달 6만 원 나왔어요.”
“우린 5만 8천 원!”
그 옆에서 나는 웃는다.
“저는… 23만 원이요.”
그 순간, 두 집이 동시에 ‘와…’ 하며 나를 바라본다. 그 눈빛엔 동정과 호기심이 섞여 있다.
그래서 나는 겨울철 ‘창고 난방법’을 개발했다.
창고에서 캠핑용 가스버너를 빌려와, 방에서 라면을 끓이며 난방 효과를 얻는 거다. 문제는… 라면 냄새가 온 방에 배서, 손님이 오면 “어제 라면 드셨어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는 거다.
기름보일러 때문에 생긴 또 하나의 비극(?)은 ‘타이머 실험 사건’이다.
어느 날 나는 보일러를 절약하려고 타이머를 1시간만 켜놓았다. 딱 1시간 후, 방이 적당히 따뜻해졌길래 만족하고 잠들었는데… 새벽 4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방이 냉동고가 돼 있었다. 숨을 내쉬면 입김이 나왔고, 물컵 속 물이 얼어 있었다. 나는 결국 패딩을 입고 다시 잤다. 그날 아침, 101호 아주머니가 물었다.
“어제 새벽에 운동하셨어요? 마당에서 숨이 하얗게 나가던데.”
또 한 번은, 기름을 넣으러 갔는데 주유소 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아, 또 오셨네요. 이번엔 몇 리터 채워드릴까요?”
“30리터만 주세요.”
그랬더니 사장님이 “아이고, 그거 넣고 며칠 가겠어요?”라며 농담을 던졌다.
며칠 후,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정확히 6일 만에 다시 갔다.
가끔 집주인이 구석집 현관문을 열고 나와 마당을 둘러본다.
“창고 잘 쓰고 있어요?”
“네, 너무 잘 쓰고 있어요. 비밀번호가 정말…”
내가 말끝을 흐리면, 집주인이 심각하게 말한다.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나는 속으로 ‘네, 세입자 전원과 고양이까지 이미 다 알고 있어요’라고 중얼거린다.
어쨌든 우리 마당 생활은 오늘도 평화롭다.
창고 비밀번호는 변하지 않고, 기름보일러는 여전히 비싸고, 집주인은 가끔 나타나고, 세입자들은 창고에서 서로 물건을 빌리며 산다.
이런 소소하고 웃긴 일상이, 우리 마당을 지키는 힘인지도 모른다.
---
#해시태그
#그냥웃긴게제일웃겨 #23화 #창고비밀번호0000 #웃긴일상 #마당공동생활 #기름보일러의눈물 #시트콤같은하루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