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끝일기 27화

~~ 상실 끝의 너~~ 문피아

오늘은 2025년 8월 10일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제 따온 수박이 부엌 한가득 쌓여 있었다. 4~5kg쯤 되는 게 12통이나 되니, 아무리 식구가 많아도 다 먹기는 힘들겠다 싶었다. 주인언니에게 수박이랑 옥수수를 드리고, 나머지는 사진을 찍어 이웃들에게 연락했다. 저번에 거래했던 당근 고객 두 분께도 연락해 봤지만, 이미 수박을 사셨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단톡방에 있는 빌라 주민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작은 수박 두 통에 25,000원이라고. 신기하게도 빌라 주민이 모두 주문을 해 주셨다.
우리가 먹을 것 빼고 6통만 남아 있었는데, 세 집에 두 통씩 나눠 드렸다. 못생긴 호박도 덤으로 얹어 드렸다. 썩히느니 빨리 팔고, 먹을 분께 드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돌아왔다.

원래는 친구 집에 가려고 했는데, 어느새 종일 글만 쓰고 있었다. 문피아라는 사이트를 처음 써봤는데, 초반엔 조금 헷갈렸지만 점점 마음에 들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이 이미 그곳에 많았고, 독자와 바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하루 종일 여러 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약간의 공포·스릴러·로맨스 장르로 가기로 결심했다. 제목은 〈상실 끝의 너〉. 마음은 여전히 십 대라, 젊은 감각으로 써 내려가려고 한다.

그 첫 장면을 쓰다가, 나도 모르게 숨이 멎을 만큼 몰입했다.


((상실 끝의 너))

1화. 세진동, 봄이 오다

비행기 추락 사고.
그 세 단어는 아직도 내 귀에 쿵 하고 울린다.
열다섯 살, 중학교 3학년 봄방학 마지막 날이었다.
TV 속 뉴스 앵커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심했고,
그 속에서 부모님의 이름이 또렷하게 발음되는 걸 들었을 때,
내 세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 후로 5년.
나는 스무 살이 되었고, 언니는 스물세 살이 되었다.
우린 고향을 떠나, 세진대학교 근처의 25평 아파트로 이사했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은 세를 주고, 사고 보상금으로 산 작은 집.
낯선 동네의 공기 속에 우리 사연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희야, 오늘 장 좀 보고 와. 냉장고가 텅텅 비었어.”
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은 서로에게 부모이자 친구였다.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하는 건 들을 만큼 들었고,
위로라는 이름의 시선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잘 알았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그냥 평범한 자매로 살기로 했다.

마트까지 걸어가는 길은 꽃 냄새로 가득했다.
봄이었다.
따뜻한 햇살에 코트를 벗어 들고 걸음을 옮기는데,
맞은편에서 누군가 달려오다 내 앞에서 멈췄다.

“아… 죄송합니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
숨이 가빠 있었지만 웃는 얼굴이 묘하게 선명했다.
짙은 눈썹 아래, 부드럽게 웃는 눈.
그 웃음은 오래전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안겼다.

“괜찮아요.”
나는 짧게 대답하고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더니 전화를 받았다.
“형, 금방 가. 아… 아니, 사람 하나 마주쳤는데… 아니야. 갈게.”

그날 저녁,
나는 마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남자를 또 보았다.
이번에는 길 건너, 친구로 보이는 두 명과 웃으며 걷고 있었다.
그는 내 쪽을 보더니, 아주 짧게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마치 ‘기억하겠다’는 듯,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 순간,
이 동네에서의 새 출발이 그저 평범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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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되고, 언니는 학교와 아르바이트로 바빴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세진대 앞 거리를 돌아다녔다.
카페, 편의점, 서점…
그렇게 발품을 팔던 중, 골목 안 작은 북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자 종이 울리고, 그가 거기 있었다.

“아… 그날…”
그도 나를 기억한 듯 놀란 눈을 했다.
“저 기억하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사장님?”
그가 웃었다.
“사장은 아니고, 형이 하는 가게예요. 전 그냥 도와주는 거고요.”
그의 웃음이 또다시 내 마음을 살짝 건드렸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익숙할까.
왜 그 웃음이, 오래된 기억 속 무언가를 건드리는 걸까.

“혹시… 아르바이트 찾으세요?”
그가 물었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표정이 그렇게 말하네요.”

(((봄바람이 스쳤다.))) 다른 또 하나의. 작품
그 바람 속에서, 아주 오래전 잊은 줄 알았던 설렘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정희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차가운 물 위에 떠 있었다. 그러나 그 물결 위에 비친 건 하늘이 아니라, 울부짖는 아이, 숨이 막혀오는 남자, 눈을 감는 노인… 모두 검은 그림자에 삼켜지는 순간의 표정들이었다. 발끝에 닿는 건 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는 검은 뿌리였고, 그것이 허리를 감싸 천천히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그때, 물 위로 젖지 않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허주가 나타났다. 현실에서보다 훨씬 인간에 가까운 모습, 그러나 눈빛은 여전히 깊은 심연 같았다. 그는 정희에게 이곳이 자신의 기억이자 그녀의 잊힌 기억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비행기 잔해 옆에서 부모가 마지막 숨을 내쉴 때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정희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허주는 담담히 말했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의 감정을 먹고 존재한다. 절망, 공포, 그리고 그 뒤에 숨은 그리움.”
물 위에는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윤재가 깨진 병을 들고 무릎 꿇은 채, 검은 불꽃에 잠식되어 가는 모습. 허주는 그것이 미래의 한 가능성일 뿐이라 했다.

그 순간, 멀리서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정희야… 깨어나라.”
물 위에 서 있는 따뜻한 기운의 실루엣이 손을 내밀었다. 반대편에서는 허주의 차가운 손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나를 선택하면, 네 부모의 죽음이 왜 필요했는지 알게 될 거다.”

따뜻함과 차가움, 두 방향으로 동시에 당겨지는 힘.
정희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모든 것이 뒤집혔다.

오늘 하루는 글 속에서 살았다. 수박 장사도하고, 옥수수도 팔았지만, 내 마음은 온종일 허주의 그림자 속을 걸었다.
아마 내일도 이 이야기를 계속 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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