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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나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지점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그는 내 스케줄이 조금이라도 비는 날이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듯 날 챙겼다.
아침에 출근길을 함께한 뒤 저녁에 다시 데리러 오는 루틴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그는 그 이상을 바랐다. “이 날은 괜찮아? 오늘 좀 일찍 끝난다고 했지?”
그의 말투는 늘 조심스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의지는 단단했다.
나는 부담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기울어지는 걸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연습장 가자. 야외가 좋아. 공도 멀리 날아가는 게 보이고.”
그는 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잠깐 망설이자 그는 금세 이유를 묻지 않고 가방을 가져다 들었다. “안 가도 돼. 그냥 산책만 해도 좋아.”
그 말 한마디가, 오히려 나를 따라나서게 했다.
그의 ‘강요 없는 배려’는 이상하게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실외 골프 연습장에 도착하자 겨울 바람 사이로 넓은 필드가 펼쳐져 있었다.
그는 먼저 헬스장 쪽으로 날 이끌었다.
“몸을 좀 풀어야지. 그래야 다치지 않아.”
그가 아령을 드는 모습은 예상보다 훨씬 더 안정돼 있었고, 동작마다 힘의 방향을 정확히 아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겉으론 말수 적고 차분한 사람인데, 운동할 때만큼은 딴 사람처럼 능숙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여기 이 근육이 같이 움직여. 힘을 주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해.”
그는 내 팔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맞춰줬다. 손이 스칠 때마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었다.
그는 그런 내 반응을 눈치챘는지 모른 척하며 또박또박 설명만 이어갔다.

헬스장에서 몸을 풀어준 뒤, 우리는 본격적으로 연습 타석으로 이동했다.
그는 미리 연락해두었던 듯 나에게 골프 선생님을 소개했다.
“이분이 기초 다 잡아줄 거야. 기본은 정확해야 해.”
그 말투 속엔 나를 잘하고 싶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의 세계에 나를 자연스럽게 데려가면서도, 무엇 하나 억지스러운 게 없었다.

처음 골프채를 잡는 내 손을 보더니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초보치고… 음, 나쁘지 않은데요? 손 모양은 금방 잡히겠어요.”
그 말에 은근히 용기가 생겨, 나는 그의 눈치를 살짝 보았다.
그는 내 표정을 읽은 듯, 입꼬리를 조용히 올렸다.
“봐, 잘한다니까.”

공이 제대로 맞지 않아 허공만 가르다가, 몇 번을 헛스윙했을 때
나는 민망해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는 옆에서 천천히 다가와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서두르지 마. 공을 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흐름만 느껴.”
말도 참 쉽게 하지…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그가 내 손등 위에 살짝 손을 얹어 그립을 잡아주는 순간,
난 이상하게도 숨을 잡아삼켰다.

바람이 스쳤고, 내 손에 그의 체온만 남았다.
공이 시원하게 날아가며 멀리 떨어지는 걸 보자
그는 아이처럼 박수를 쳤다.
“봤지? 된다니까.”
그 순간, 문득 저 사람이… 누구보다도 내가 잘되길 바라는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연습한 뒤 우리는 벤치에 앉아 따뜻한 캔커피를 나누어 마셨다.
그는 내 손에 든 캔이 차갑다며 자기 쪽 주머니에 넣어 따뜻하게 데워서 다시 건넸다.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의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쌓일수록, 마음속 어색함이 어느새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가르쳐? 나… 골프 잘 치는 거 꼭 보고 싶어?”
그는 잠시 내 얼굴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응. 잘하는 걸 보고 싶은 것도 맞고… 그냥 네가 뭐든 할 때 옆에 있고 싶어.”

그 말은 바람보다 더 가볍게 들렸지만
내 마음에는 깊고 조용하게 박혀 들어왔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도 그는 계속 옆에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가 그에게 기대고 있었다는 걸
그날에서야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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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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