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8화 — 서로를 향해 기울어지는 순간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8화 — 서로를 향해 기울어지는 순간

운동을 마치고 샤워실 앞에서 잠시 마주 선 채
우리는 이유 모를 정적 속에 서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어느새 이전과 전혀 다른 온도로 바뀌어 있다는 걸.

주차장에서 차로 걸어가는 짧은 거리조차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어깨가 스치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먼저 흔들려 떨렸다.

차 문을 닫자,
좁은 실내에 그의 숨결과 내 숨결이 얽혀 들었다.
창밖은 어둑해지고
도시의 불빛들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는 운전대를 잡은 채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호텔 갈래?”

그 말은 예상 못 했던 문장인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고
놀라서 움츠러들지도 않았다.

그의 눈빛만은 분명했다.
가볍지도, 장난스럽지도 않게
진심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심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의 문을 조금 더,
천천히 열어젖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도, 나도
이미 알아버렸다.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강하게 끌리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둘 다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심장은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고동쳤다.
머리는 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마음은… 이미 그의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차 안엔 말보다 더 명확한 공기가 흘렀다.
피할 수 없는 어떤 감정,
지금 여기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솔직해져버린 때.

나는 창밖을 보며
작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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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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