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이른 아침, 어제의 나를 마주하다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9화 — 이른 아침, 어제의 나를 마주하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도 전.
창밖은 새벽과 아침의 사이에 걸린 듯
희끗희끗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 시각에 나는 눈을 떴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깨어난 것처럼
가슴 한가운데가 답답하게 조여 왔다.

잠결에 기억이 쏟아지듯 밀려왔다.
호텔로 향하던 그 순간부터
어제 밤,
우리를 감싸던 그 뜨거운 감정들까지.

그 모든 장면이
마치 누가 다시 틀어주는 영상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겁이 났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마음을 열었을까?’

심장이 요동치고
어깨가 굳어졌다.
그를 만난 지 오래된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빠르게 그에게 스며든 게
무섭기까지 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잠들어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은 편안하고,
아무 걱정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게 이상하게 서운했다.
얄밉기까지 했다.

나는 그렇게 흔들렸는데
왜 그는 저렇게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

어젯밤
그의 손길과 말들,
눈빛과 숨결이
마치 나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하지만 정작
그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도,
나를 어찌 생각하는지도
분명하게 말한 적 없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너무 깊숙이 마음을 내주어 버렸다.
그게 가장 무서웠다.

‘나만… 이렇게 빠졌던 걸까?’

그 생각이 들자
가슴이 뜨거워졌다가
차갑게 식었다.

그는 여전히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평온한 숨.
변함없는 얼굴.

나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젯밤 죽을 만큼 그립게 굴던 건 누군데…
왜 아침이 된 지금은 나만 이렇게 불안해야 하지?’

분명 어제 우리는
서로에게 끌렸고
감정이 차오르는 걸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 보니
그 모든 게
한순간의 열기만으로 끝날 수 있는 것 같아
겁이 났다.

나는 이 남자에게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흔들렸고,
그보다 더 깊이 빠져들었고,
그래서 더 두려웠다.

아무 미래도 약속받지 못한 채
내 마음만 먼저 나가버린 듯한 기분.

그게
참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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