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는 이유
미화는
도망치듯 떠나기보다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기로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지방 스케줄을 일부러 짰다.
새벽에 출발해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일정.
굳이 미화가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사람을 쓰면
충분히 해결될 일이었고,
오히려 그게 더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미화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화가 직접 해야만 하는 일’로
일을 다시 설계했다.
구조를 바꾸고, 책임을 붙이고,
대체 불가능한 위치에
자신을 놓았다.
그 일은
남자가 하기에도
버거운 작업이었다.
몸을 쓰고,
현장을 읽고,
사람들을 조율해야 하는 일이었다.
미화는
일에 파묻혀 있으면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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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그걸 가만히 두지 않았다.
미화가
사내들 속에 섞여
작업을 지시하고
현장을 오가는 걸
그는 못 견뎌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불안은
행동으로 드러났다.
그는
자기 일의 대부분을
직원들에게 전화로 지시했다.
회의도, 결정도
현장에서 해결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미화가 있는 곳에
함께 서 있었다.
“나도 좀 몸 써야지.”
“전화로만 일하면 답답해.”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미화는 알았다.
그가 선택한 건
일이 아니라
미화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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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그는
미화의 옆자리에 서서
같이 땀을 흘렸다.
작업복을 입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사람들 사이에서
미화를 자연스럽게 보호했다.
누군가가
미화에게 함부로 말하려 하면
그가 먼저 나섰고,
미화가 무거운 걸 들면
아무 말 없이 받아갔다.
그 모습은
든든했지만
동시에
미화를 불안하게 했다.
나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
왜 이 사람은
항상 같이 있어야만 할까.
그의 눈길은
늘 미화를 쫓고 있었고,
잠시라도 떨어지면
확인하듯 다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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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작업이 끝나고
해가 완전히 진 뒤였다.
미화가
정리되지 않은 서류를 보며
마지막 확인을 하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이렇게 힘든 일,
왜 꼭 네가 해야 해?”
미화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너에게서
도망칠 수 없으니까.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대신
미화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이게…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야.”
그는
그 말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미화의 손을 살짝 잡았다.
“그래도 혼자는 안 돼.”
“네가 버티는 걸
내가 옆에서 보는 건
너무 힘들어.”
그 말은
사랑처럼 들렸고,
미화의 숨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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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는 점점
알게 되었다.
그를 피하려 할수록
그는 더 가까이 왔고,
자기 삶을 지키려 할수록
그는 더 깊이 스며들었다.
이제 이 관계는
누가 쫓고
누가 도망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해져 버린 상태.
그리고 미화는
불현듯 깨달았다.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자기 곁을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는 걸까.
그 질문은
이전보다 훨씬 선명했고,
미화의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사랑의 이름으로
서로를 더 깊이 묶어두는 일—
그 한가운데에서
미화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이제
미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