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드는 줄 알면서도
미화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사랑 앞에서
차갑게 등을 돌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한번 마음을 내주면
끝까지 책임지려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더 무서웠다.
그를 멀리하려 애쓰는 지금조차
미화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그의 체온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목소리,
그가 웃으며 이름을 부르던 방식,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내밀던 순간들.
그 모든 게
미화의 본성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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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화의 변화를
생각보다 빨리 알아챘다.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 시간,
읽히지 않는 메시지,
예전 같지 않은 대답의 온도.
그는 단 한 번도
“왜 그래?”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대신
사랑의 밀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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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는 미화의 집 앞에
아무 말 없이 나타났다.
“잠깐이면 돼.”
그 한마디에
미화는 또다시
문을 열고 말았다.
그는 예전처럼
장황하게 말하지 않았다.
조용히, 그러나 깊게.
“네가 요즘 멀어지는 거 알아.”
“그래도 난 더 가까이 가고 싶어.”
그 말은
부담이 아니라
고백처럼 들렸다.
그는 미화를 바라보며
예전보다 더 천천히, 더 신중하게
사랑을 표현했다.
말을 아끼고
행동을 늘렸다.
필요한 것들을 먼저 챙겼고,
미화의 일정에 맞춰
자기 시간을 접었다.
“너 힘들면 말 안 해도 돼.”
“내가 옆에 있으면 되잖아.”
그의 사랑은
공격적이지 않았지만
단단했고, 끈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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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는 흔들렸다.
이 사람은
자기를 버리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졌다.
이렇게까지
깊이 들어오는 사람을
어떻게 밀어낼 수 있을까.
미화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그를 사랑해서
머무는 걸까,
아니면
그의 사랑이 없으면
견딜 수 없어서 붙잡히는 걸까.
그 질문에
아직 답을 내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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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느 순간부터
미화를 “내 사람”이라 불렀다.
가볍게,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미화는 내 사람이잖아.”
그 말이
미화를 녹였다.
평생
누군가의 확신이 되어본 적 없는 미화에게
그 말은
너무 치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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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는 깨달았다.
자신은
도망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알면
끝까지 가버리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이 사랑이
구원인지,
파멸인지
아직 알 수 없음에도—
미화는
또다시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가고 있었다.
알면서도.
너무 잘 알면서도.
그리고 그 역시
미화가 완전히 빠져들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제
이 사랑은
누군가의 선택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