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멀어지는 마음
15화 — 애써 멀어지는 마음
미화는
그를 놓아주어야 하나,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사랑을 잃을까 봐가 아니라
자신이 무너지는 게
너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기 전의 미화는
혼자서도 잘 서 있던 사람이었다.
일의 리듬을 지켰고,
사람과의 거리도 스스로 조절할 줄 알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만난 이후
미화는 하나씩 내려놓고 있었다.
약속을 미루고,
중요한 일을 대충 넘기고,
자신만의 시간은
언제나 그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 써버렸다.
그때는 몰랐다.
사랑이라 믿었기에.
헌신이라 착각했기에.
그러나 어느 순간
거울 속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눈은 늘 기다림에 젖어 있었고,
마음은 연락 한 통에
하루치 감정을 다 써버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건 내가 아니야.
그 생각이
가슴 깊숙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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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는 결심했다.
도망치듯 떠나는 이별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세우기 위한
잔인한 선택을 하기로.
그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문자가 와도
바로 읽지 않았다.
“바빠?”
“왜 연락이 없어?”
“무슨 일 있어?”
그의 메시지들은
점점 길어졌고,
점점 조급해졌다.
미화는 알았다.
자기가 지금
그를 애태우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이상하게 숨을 쉬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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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생각하지 않으려
일정을 가득 채웠다.
오래 미뤄두었던 약속들을 다시 잡고,
혼자 운동을 하고,
불필요하게 길을 돌아 집에 왔다.
그의 자리가 남아 있는 시간만큼
미화는
자기 삶을 다시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밤이 오면
모든 결심은 흔들렸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그가 혹시 상처받지는 않았을지
그 생각이 마음을 후벼 팠다.
그래도… 지금 멈추지 않으면
나는 끝내 나를 잃을 거야.
그 생각 하나로
미화는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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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그는 참지 못하고
길고 솔직한 메시지를 보냈다.
“네가 이렇게 변하니까 무섭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줘.
아무것도 모르고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어.”
미화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 같기도 했고,
동시에
이 관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보여주는 고백 같기도 했다.
답장을 쓰다
지웠다.
또 쓰다
지웠다.
그리고 결국
아무 말도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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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는 깨달았다.
사랑을 놓는다는 건
상대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직 그를 사랑했다.
아니, 많이 사랑했다.
그래서 더
멀어져야 했다.
이 사랑이
미화를 삼키기 전에.
그날 밤,
미화는 조용히 말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자기 자신에게.
“조금만… 나부터 사랑하자.”
그 말은
이별의 선언도,
화해의 약속도 아니었다.
다만
미화가 처음으로
자기 편에 서겠다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고 단단한 다짐이었다.
그리고 이 다짐은
곧
그와 미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