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그가 없는 시간


그가 없는 날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전화가 울리지 않는 집,
메시지 알림이 없는 저녁,
시계 소리만 또각또각 커지는 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의 나는
늘 바빴다.
웃고, 먹고, 움직이고,
그의 속도에 맞춰 하루를 채우느라
불안을 느낄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가 사라지는 이삼 일,
그 공백은
아무리 애써 외면해도
내 앞에 또렷이 놓였다.

나는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전화기를 손에 쥐고
몇 번이나 화면을 켰다 껐다 했지만
끝내 숫자를 누르지 못했다.
그가 바쁘다는 걸 알았고,
그의 일정을 존중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받지 않는 전화가 될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웠다.

그의 부재는
내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아프게 베어내지 않고
조용히, 천천히,
확신을 잠식해 갔다.

나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사랑에 매달리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

어느 날 밤,
그가 연락 없는 하루를 보낸 뒤
늦은 시간에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너무 정신없었어. 내일 보자.”

그 한 줄에
나는 안도했고,
동시에 서러워졌다.

보고 싶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는 늘 그렇게
‘내일’을 약속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내일을 믿는 사람이었다.


---

나는 생각했다.
지금껏 사랑을 해본 적 없는 내가
이 사랑 앞에서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배워버린 건 아닐까 하고.

기다리는 법,
참는 법,
묻지 않는 법,
그리고 스스로를 달래는 법까지.

사랑은 원래
이렇게 혼자 견디는 감정일까.
아니면
내가 사랑을 잘못 배우고 있는 걸까.


---

그가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다시 웃었다.
그의 품에 안겨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마음을 접어두었다.

하지만
그가 없는 시간에만 느껴지는 이 감정—
막막함, 불안, 외로움—은
분명 나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나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그가 나를 떠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 질문은
아직 말로 꺼낼 수 없을 만큼
무거웠지만,
분명히 내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사랑은
이제 막
다른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그가 없는 시간 속에서
미화는
처음으로
사랑이 아닌
자기 자신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별의 시작인지,
각성의 시작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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