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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변호사 Dec 01. 2019

[변호사언니들] 부부 사이의 거리

롱디 부부가 된 이유

나는 2016년 8월 2일부터 지금까지,

3년하고도 약 4개월 째 장거리 부부 생활 중이다.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 그 사이에 춤추는 하늘 바람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대하여>란 시가 있다.


너무나 유명해서 블로그나 누군가의 페이스북에서 한 번쯤은 다 읽어보았을 시인데, 대학교 시절 처음 접했을 때 이십대 초반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진한 감동을 받았었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 "두 영혼의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고,

그 사이를 "하늘 바람이 춤추게 하는" 그런 사랑이 멋있어 보였고,

그런 사랑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겠지.


서로의 잔을 번갈아 나누며,

한쪽의 빵만을 먹지 않고,

상대를 온전한 하나의 영혼으로 존중하며 함께 서서 성장하 존재로 여기는 사랑을 찾고 싶어서.


(물론, 좀 더 나이가 들어 살아보니, 서로의 잔을 번갈아 나누고 한쪽의 빵만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추상적인 의미가 니라 매우 "현실적인 문제"라는 !!도 알게 되었고)


결혼에 대하여

그때 알미트라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스승이여, 결혼은 무엇입니까.
그는 말했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니,영원히 함께 하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생애를 흩어 버릴 때에도 그대들은 함께 있으리라.
그렇다, 신의 말없는 기억 속에서도 그대들은 함께 있으니라.

그러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그대들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마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있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 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으니.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참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발리 Kutta 해변의 석양


롱디의 시작은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마음에서부터 


처음 롱디 시작은 내가 법인 지원으로 일년 정도 달콤한 초코렛과 와플, 그리고 이천여 개가 넘는 수제맥주의 나라 벨기에 브뤼셀로 유럽 경쟁법을 공부하러 떠나면서 였다.

 

브뤼셀의 상징, 그랑플라스 (Grand Place)

통상 남성 배우자가 유학을 가거나 해외 파견 등을 가면 여성배우자들이 휴직을 하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따라가는 경우가 많고,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더욱 더 그런 사례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반대의 경우에 남자 배우자가 휴직을 하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따라가는 경우를 찾아보긴 어렵다. 


남편은 자유로운 영혼이긴 했으나, 당시 새로운 직장에 들어간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여서 직장을 그만두긴 애매했다. 


나 역시 로펌에서 유학은 큰 보상이자 포상이었 내 인생에도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기에 단지 배우자가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정만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1년 반 정도로 기한이 정해진 롱디였고, 사실 우리 연애의 첫 시작 자체가 한국-미국 롱디였으므로 두려움 없이 우린 유럽과 한국 장거리 부부 생활을 시작하였다. 


EU경쟁법 과정 동료들

홍콩-싱가포르로의 이직


다행히 약 두달에 한 번정도 만날 수 있었고, 만날 때마다 함께 유럽여행을 하며 즐거운 유학생활을 보내던 중 남편이 다니고 있던 회사의 APAC(아시아태평양) 오피스에서 오퍼를 받게 되었다.  


홍콩에서 일하는 자리였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중국, 일본, 한국, 대만, 태국 등 아시아 메디컬 스텝들 관리, 지원, 총괄하는 너무나 좋은 포지션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남편에게 온 좋은 기회를 나로 인해 희생하거나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꼭 한국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돌아오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아직 한창 일하고 커리어를 디벨롭 하며 더 넓은 세상에서 좋은 이들과 함께 해볼수 있는 시기를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남편이 나와 함께 가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브뤼셀로 떠나지 못했더라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누릴 자유를 내 배우자가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더라면,

나는 많이 괴로워했을테니까.


남편이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

내 영혼이 사랑는 이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인생의 새로운 시공간을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남편의 새로운 여정을 응원할 차례였다.


그렇게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홍콩-브뤼셀 롱디는 홍콩-서울을 거쳐 지금은 싱가포르-서울이 되고


우리 부부의 두 영혼의 언덕 사이에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서해와 중국해가 출렁이게 되었다.

홍콩의 밤과 아침


부부 사이에 필요한 거


함께 서있으되 너무 가깝지 않아, 그 사이에 사이프러스와 참나무가 자라고 하늘바람도 춤추는 그런 사이.


내가 바래왔던 부부의 거리


서로의 도전과 성장을 응원하며,

물리적으로 멀어도 마음은 하나였던 지난 3년하고도 4개월의 시간들


아일랜드 교회에서 열렸던 친구 결혼식

30대 초반, 아직 아이가 없고 어렸던 시절이라 도전해볼 수 있었던 이 시간들이


서로의 인생에 있어 축복같은, 선물같은 시간이었기를 소망해본다. :)


그리고, 이제 다시 함께 손을 잡고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여정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지면서


우리에게 가장 편안하고 어울리는 음색을 내줄 수 있는 영혼의 거리를 찾아가기를,


항상 소망한다.


따로, 또 같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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