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아이들, 특히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생일잔치.. 밴쿠버에서 지내는 동안 가끔씩 친구들의 생일 초대를 받으며 그곳의 생일 파티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생일 몇 주 전에 초대장을 받는데 그 초대장에는 RSVP라는 말이 쓰여 있다. 프랑스어 Répondez s'il vous plait의 줄임말인데, 영어로는 Reply, please라는 뜻으로, 초대에 응할 것인지 아닌지를 미리 알려달라는 것이다. 응답을 해주지 않으면 파티 준비에 지장이 있으므로 반드시 파티에 가는지 못 가는지 회답을 해줘야 한다.
그리고, 생일 파티에 와준 아이들에게는 꼭 구디백(goodie bag)을 들려 보낸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이게 많이 활성화된 모양인데, 그때는 별게 다 있다고 생각했었다. 구디백은 한마디로 답례품인데, 구디백용 예쁜 비닐봉지에 주로 작은 장난감이나 사탕, 초콜릿 등을 골고루 담아서 포장해두었다가 파티가 끝나고 아이들이 집에 돌아갈 때 하나씩 기분 좋게 들려 보내는 문화다.
구디백에 주로 이런 것들을 넣어주곤 한다
생일 파티는 다양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집에서 하는 아이들도 있고, 극장이나 수영장에서 하기도 하고, 고학년 여자 아이들은 스파에서 하기도 한다. 다 같이 네일 케어도 받고 그런다고 한다.
딸아이가 캐나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생일 초대를 받게 되었다. 같은 반 필리핀 남자아이였는데, 생일 파티 시간에 맞춰 데려다주고 몇 시에 데리러 오라는 말을 듣고 나는 집에 왔다. 시간 맞춰 데리러 가니, 아이들이 아직도 잘 놀고 있다면서 나 보고도 들어와서 음식을 좀 먹으라고 잡아 끈다. 생일 파티 겸 housewarming party(집들이)를 하고 있다며 같이 있다가 아이를 데리고 가라는 거다. 머쓱했으나 그냥 오기도 뭐하여 들어갔다. 럭셔리한 단독 주택이었는데, 필리핀 사람답게 새끼 돼지 바비큐를 돌리고 있다. ㅎㅎ
아이들은 마당에서 너무나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아이 생일이라고 clown(광대)을 불러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보통 집이 아니다 ㅎㅎㅎ 그리고 그곳 아이들 생일 파티에 종종 등장하는 피냐타(pinata)를 터뜨리고 놀았는데, 이 피냐타는 우리나라의 박 터뜨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피냐타를 터뜨리면 주로 사탕이나 초콜릿, 캐러멜 등이 쏟아져 나온다. (피냐타는 마트에서 팔고 여자아이용 공주 모양 피냐타부터 온갖 모양의 알록달록한 것들이 많다)
Pinata 터뜨리기_눈을 가리고 곤봉으로 내리치는게 원래 룰이라고.. Dreamstime.com에서 가져옴
우리 딸은 집에 가지 않고 더 놀겠다고 난리를 쳐 하는 수 없이 나는 집에 왔다가 다시 데리러 갔다는… 처음 갔던 생일 파티에서 캐나다 아이들의 생일 파티를 제대로 경험했다.
한 번은 극장에서 하는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극장에 딸린 파티룸에서 먹고 마시고 한 다음 다 같이 영화(대체로 디즈니나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것이다. 파티 문화가 발달한 나라라 그런가 극장이든 수영장이든 볼링장이든 개별 파티룸이 있고 진행해주는 언니 오빠 직원(또는 알바)들이 있다.
첫 해에는 캐나다에서의 생일 파티 문화가 낯설어 제규네와의 파티로 조촐히 지나가고 이듬해 11월에는 아이 아빠도 오기로 하여 성대한(?) 파티를 해주었다.
어디서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딸아이가 좋아하는 실내놀이터로 정했다. 집에서 가까운 Crash Crawly’s라는 곳이었는데 우리나라 실내놀이터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내가 어릴 때 이런 곳에서 놀았다면 참 행복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이다.
울 딸은 친한 여자아이들 9명을 초대했다. 케이크도 먹고 피자랑 핫도그도 먹고, 기차도 타고 자동차도 타고.. 놀이터에서 이보다 신날 순 없다 싶게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놀았다.
울 만수 너무너무 행복했던 날.. 하지만 실내놀이터에서의 생일파티는 엄마 아빠한테는 너무 힘들다. 애들 찾아다니느라 진이 다 빠졌다는.. ㅎㅎ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데리러 왔을 때 아이들 찾느라 아주 애먹었다. (너무 넓어서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찾기 진짜 힘들다) 만수 아빠가 오지 않았더라면 나 혼자는 어림도 없었을 거다. 그리고 고맙게도, 따라왔던 한국 엄마가 계속 같이 있어주어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풍선과 구디백을 들려주니 너무나 행복해한다. 아~ 그 모습을 보면 나 또한 너무 행복하다. 이 맛에 아이 키우나 싶은..
이때로부터 정확히 10년이 흘렀다. 우리 딸은 하필 올해 생일날 수능 시험을 보았다. 10년 전 캐나다 크래시 크롤리즈에서만큼은 아니어도 오랜만에 아이 생일을 위해 멋진 생일 저녁을 준비했다. 한강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디너 크루즈를 예약하여 한강 야경을 보며 뷔페를 먹고 멋진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그동안 공부하느라 수고한 딸아이를 위로하고 축하해주었다. 실기 시험이 남았지만, 좋은 결과가 있어 공약한 대로 내년에 10년 만에 캐나다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