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2023년으로 간다.
미국도 이제 12월 31일이므로 짧게나마 올해의 나에게 인사를 보내야겠다.
올해 어땠지? 하고 물으니 "대체로 행복했지"하고 금방 답이 나왔다. 오 이게 나의 대답인가? 그렇게 나쁜 일도 그렇게 힘든 일도 없었다. 아이도 학교생활 잘하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남편이 미운 날보다 고마운 날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아침에 눈 떴을 때 저기압인 날도 별로 없다. 여행도 재미있게 다녔고, 동네에 한식당이 생겨서 끼니 걱정이 줄어 기쁘다. 미국에 친구 없이 사는 내가 더 이상 불쌍하다 생각하지 않으며, 자원봉사와 영어공부를 시작한 내가 조금은 기특하다. 아, 그런데 주식이...또르르.
낯선 나라에 떨어져서인지 아이가 태어나서인지 인과관계(아마도 둘 다)를 따질 순 없지만 미국 와서 2년 정도는 늘 불안한 마음이 따라다녔다. 그땐 쓸데없는 걱정으로 신경을 많이 썼는데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이런 거였다. 남편이 차 타고 출근했는데 혹시 사고 나서 연락 오면 어쩌지? 내가 영어 못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더 나쁜 일이라도 생긴다면. 아이가 이층에서 떨어지면 어쩌지? 아 왜 거실 천장 뚫린 이층 집으로 왔을까. 그 외 자잘하게는, 세금신고 제대로 안 돼서 조사 들어오면 어쩌지? 벽난로 켰다가 일산화탄소 중독되면 어쩌지? 누가 벨 누른 거지? 나가봐도 되나 무서운데. 누가 전화하는 거지? 내가 받아야 할까? 등등 이 사회를 제대로 모르는 데서 오는 불안과 불신이 있었다. 몇 번에 걸쳐 괜찮다는 것이 확인되니 이제 이런 불안감은 거의 없어졌다.
사실 나의 불안은 남편이 나를 보호할 생각이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증폭됐다. 내가 이토록 불안이 많은 인간이라는 걸 나도 몰랐고 남편도 몰랐다. 남편은 한국에서처럼 자주적인 나를 기대했고 난 그러지 못해 자존감이 끝도 없이 떨어졌다. 그런데 그땐 남편 자존감도 생애 최저점을 찍을 때라 누가 누굴 보살필 상황이 아니었다. 남편도 힘들게 일하다 집에 와서 내가 요구하는 것들을 또 하기 버거웠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내가 좀 정신 차리고 나서야 들었다. 미국 가면 모든 거 다 알아서 한다더니 결국 내가 또 알아보고 걱정하게 만드는구나 하며 원망도 많이 했었다. 그런 것들이 쌓여 한국 갔을 때 꼭 다툼으로 번졌다. 아마도 내가 미국에선 보호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이처럼 있다가 한국 가면 자주적 어른 스위치가 켜지며 폭발하는 것 같았다. 그 뒤론 조금 서운할 때 마이너스 통장에 적립되고 있으니 그러지 말라고 하고, 남편도 내가 예민한 부분 또는 단어 사용을 자제해줘서 괜찮아졌다. 그리고 H의 조언에 따라 고맙다는 표현을 자주 하려고 노력한다.
괜찮다. 나 좀 행복하네? 2022년이 그런 해라서 좋았다. 2020년까지만 해도 울적하고 무기력한 마음에 지지 않으려고 정신 붙들어 매고 버틴다는 생각이 컸는데 점점 나아져 그 단어까지 찾아왔다. 버티려고 브런치도 시작했는데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며 힘도 많이 얻었다. 내년에는 글도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행복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