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마무리
어린이 치어리딩 수업의 대미를 장식하는 Family & Friends Night이 오늘 열렸다. 어린이들의 공연을 가까이서 직관하니 훌쩍 큰 모습에 감격이 밀려오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모두 합쳐 10여분의 감동을 획득하기 위해 100여분의 상장 수여식을 견디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S가 무심한 듯 손가방을 하나 건넸다. 지루한 참에 이게 뭔가 싶어 꺼냈다가 눈물둑이 터질 뻔했다. 우리가 나란히 앉아서 다행이다.
꼬꼬가 킨더 때 한국학교를 다니면서 간간히 언급하는 로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친한 친구라는 말이 나올 때쯤엔 플레이데이트를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말하기 대회 준비반에 같이 들어가게 됐길래 로이의 엄마 S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극도로 낯 가리는 나 같은 인간에겐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아이와 부모들의 성향이 잘 맞는 가족이길 마음속으로 많이 바랐다. 꼬꼬와 로이는 만나면 대체적으로 잘 놀았고, 다소 어린 행동을 하는 꼬꼬를 로이가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는 모습에 나는 반해버렸다. 로이를 그렇게 잘 키운 S는 나와 동향인 것도 모자라 서로의 가치관도 비슷한 부분이 많아 대화가 잘 통했다. 몇 년을 알고 지내도 존대를 하는 나인데 일 년 정도 지나자 진짜 동생처럼 말도 놓게 됐다. 그런데 우리가 한국에 3년 살이를 하러 가게 된 것이다. 전부터 말하긴 했는데 진짜로 말이다.
S와 로이는 한국에서의 계획이 있어 내일 한국으로 떠날 예정이라 오늘이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었다. 우리도 6월에 한국으로 들어가니까 7월엔 만나서 같이 놀 수 있겠다 싶어 마지막이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같이 찍은 사진들을 모아 너무 예쁜 BFF(Best Friend Forever) 액자를 만들어서 가져온 것이다. S와 로이가 각각 쓴 카드와 시애틀 티셔츠와 함께. 편지를 읽지 않아도 S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갑자기 다 느껴졌다. 미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떠나고 남겨진 사람의 마음. 허전하고 붙잡고도 싶고 같이 가고도 싶고 헤어져서 슬픈 그 마음속에 나도 있던 적이 있었는데 까맣게 잊고서, 3년 뒤엔 돌아올 거고 여름마다 한국에서 만날 수 있고 영상통화도 자주 할 테니 괜찮다고 나 혼자 편하게 생각한 것이다. 미국 집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나를 보며 S가 어떤 마음일지 헤아리지 못하고 나의 정신없음을 생중계하기 바빴다. 내가 이러고도 언니 소리를 듣는다. 꼬꼬의 다소 어린 행동은 모두 나한테서 물려받은 게 확실하다.
S의 편지를 읽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진짜 미국을 떠나는구나. 비로소 입 밖으로 꺼내본다 그 무거운 말을. 한국으로 간다고만 했지 미국을 떠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한국 가서 보면 되지 하면서. 긴밀한 관계 외에는 소리소문 없이 한국으로 사라질까도 싶었는데 아무래도 소리는 내고 가야 할 듯싶다. 내 시간은 한국에서 흐를 테지만 상대방의 시계는 나와 다르고 우리 사이에는 시차(+a)가 있다. 저절로 발이 맞을 수 없으니 부지런히 발을 굴려야 할 테다. 잊지 말아야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S야. 내가 대체로 계획적 인간이란 거야. 4년 전부터 계획한 한국행을 실천했듯이 미국으로의 복귀도 아주 높은 확률로 이루어질 거란 거지. 그때도 미국에서 같이 재미지게 살아보자. 좀 더 멋진 언니가 되어볼게!
+ 어느새 잊어버린 보내는 마음